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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살 인생! 그러면 안된다.”
거제소방서 예방안전과 소방사 정다송
  • 입력날짜 : 2016. 09.19. 11:06
정다송 소방사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는 풍성함의 추석명절이 지나갔다.

추석하면, 반가운 친척, 친지들도 보고 주변의 어른들도 찾아뵙는 우리의 아름다운 민족 대명절을 떠올리지만 이번 추석은 예년과 다르게 조금은 차분하게 보낸 것 같다.

내가 살고 있는 거제시가 오랜 조선경기의 불황으로 어려움을 격는 이유도 있겠지만, 금년 9월 28일부터 시행되는 ‘김영란법’의 시행을 앞두고 선물에 대한 징벌적 조항이 벌써부터 경각심을 불어 넣은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게한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피부로 느끼면서 나는 아주 오래전 나에게 청렴이라는 단어를 각인시킨 한 남자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그때 내 나이 아홉이었다.

작은 시골마을에서 내 유일한 친구였던 오빠가 하필 경시대회준비로 학원에 갔고, 아버지께서는 건축사무소의 새 직원을 뽑는 날이어서 매우 바쁘셨기 때문에 어린 내게는 정말이지 덥고도 지루한 날이었다.

어머니께서는 면접을 보러 오실 분들을 위한 다과를 준비하고 계셨고 아버지께서는 다른 직원분과 서류를 보고 계셨었다.

나는 어머니가 밥수저로 휘휘 젓고 계시는 냉커피의 그릇에 시원한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것을 보고는 내가 어려서 먹을 수는 없다는 걸 알았지만 몰래 라도 가져와서 먹어야겠다.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었다.

일어나자마자 거의 동시에 양복을 빼입은 아저씨 한분이 집 마당에 들어오시며 나에게 인사를 하셨고, 부모님께서는 제시간보다 일찍 당도했던 그를 미쳐 못 본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너 다송이 구나! 예전에 현장에 아르바이트 하러 와서 봤어.”
“저도 아저씨 봤어요. 오늘은 멋있는 옷 입으셨네요!”

“응. 오늘은 정식으로 일자리를 구하러왔어. 내가 너무 일찍왔나보구나. 혼자 놀고 있어 심심하지?”

“네. 근데 저 저거 먹고 싶어요. 엄마꺼, 커피요!”

아저씨께서는 너는 너무 어려서 안된다고 하시면서 구판장에서 과자라도 사먹고 오라며 지갑을 여셨고, 나에게 주신 지폐 개수가 꽤 많았기 때문에 그때의 나는 너무 신이 나서 구판장으로 뛰어가 좋아하는 간식거리를 한참 골라 샀었다.

양껏 과자를 샀는데도 돈이 많이 남아서 두 주머니에 넣고 신나게 마당으로 돌아왔는데 어머니께서는 마당으로 들어서는 내 모습에 꽤 놀란 얼굴이셨다.

“돈이 어디서 나서 과자를 그렇게 많이 사왔니?”

나는 손가락으로 앉아있는 여러명 중 한 아저씨를 가리키며 킥킥거렸고 지목당한 아저씨도 썩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른 아저씨들은 자신의 고용주가 될지도 모르는 사람의 딸에게 과자값으로 돈을 쥐어주지 못한 사실에 내심 아쉬워하기까지 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였다.
“얼마를 줬나.”
가족들은 물론 직원들에게도 항상 다정하셨던 아버지의 말투가 너무 무섭고 냉담해서 모두들 깜짝 놀랐다.

“십만원 정도 주었습니다.”
“이런 날 내 딸애에게 과자값으로 그렇게 큰돈을 주면 어쩌나.” 하시면서 지갑에서 십만원을 꺼내 다시 돌려주셨다.

그날. 아버지는 새 직원을 뽑지 않으셨다.

그리고 저녁을 먹으며 내내 아버지의 눈치를 보는 나에게 더 이상 화를 내진 않으셨지만 딱 한 말씀을 하셨다.

“그러면 안된다.”

그해 겨울,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오시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하셨다.
딱 그해였고, 아버지께서 나에게 화를 내시는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면접이 있던 그 날의 일이 더 선명하게 기억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홉 살 까지 아버지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신 가르침이 많이 기억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날의 그 한 말씀은 나의 가슴에 각인되었다.

아버지께서는 한 번도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으셨다. 그저 단한가지. 바르게 살라고, 부끄러움 없이 살라고 종종 말씀하셨고 우리집 가훈도 ‘정직’이었다.

요즘 뉴스에서는 공직자들의 비리와 청탁 등 부정부패에 관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그런 뉴스를 볼 때면 가끔 공무원의 길을 걷고 있는 나에게도 부정부패의 청탁을 받을 때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그해 여름, 매우 많은 의미가 담겨있던 아버지의 한마디를 떠올린다.

<그러면 안된다>
나는 아직 공직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 어떠한 유혹이 있더라도 내 아버지의 가르침을 잊지 않고 기억하여, 대한민국의 공직자로써 국민의 안녕과 복리증진에 이바지하기 위해 정직하고 청렴한 소방공무원이 될 것이다.


모닝뉴스 기자 news@morningnews.co.kr        모닝뉴스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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