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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동양의 베니스, 중국 소주(蘇州)기행
수필가 윤혜영 geo0511@hanmail.net
  • 입력날짜 : 2011. 10.03. 10:43
▲서호의 해질무렵
옛 정원, 황폐한 고소대, 버드나무 새로운 듯하다
능가(菱歌)의 맑은 노랫소리, 봄이 한결같다
다만 지금 떠 있는 서강(西江)의 달
예전부터 비추는 오나라 왕궁 안의 사람 ..

이백의 詩 한수가 절로 떠오르는 소주의 서호, 작은 목선 한채가 호수 위를 고요히 떠돌고 있었다.

매일 새로운 기록을 갱신하며 첨단으로 도약하는 마천루의 숲 상해를 떠나와 소주에 도착하니 타임캡슐을 타고 현대에서 과거로 넘어온듯 고즈넉한 분위기가 이채로웠다. 일행은 나를 포함하여 두 명의 유부녀 선생님과 묘령의 아가씨 두 명이었다. 약간 흐린 날씨에 하늘에는 낮달이 떠있다. 미인의 아미와 같다는 초승달이었다면 금상첨화였겠다고 생각을 하였다. 조선족 가이드가 마이크를 들고 침을 튀기며 '하늘에는 천국이 있고 땅에는 소주, 항주가 있다'고 소리질렀다. 목소리에 자신감이 한껏 실린다.

몇 년전 발리에 갔을때 어느 박물관의 그림에 '죽어서 천국에 가니 그 곳이 곧 발리'라고 쓰여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사람들은 일부러라도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을 가장 높은 가치로 추켜세우고 싶어하는 법이니까.

낯선 관광객들과 뒤섞여 서호를 한바퀴 도는 배에 올랐다. 배는 시속 30km정도의 속도로 호수를 휘젖는다. 귓가에 의미를 모를 중국어들이 시끄럽게 울려퍼져 선실밖의 난간에 섰더니 일행들도 나와 비슷한 심정이었는지 저마다 난간을 부여잡고 먼 곳을 바라보고 섰다. 저마다 어떤 사연이 있어 한국을 떠나와 이곳까지 동행을 하게 되었지만 몸은 함께 있어도 마음은 제각기인것이다.

소주의 옛 지명인 오나라는 주(周)나라 태왕의 아들인 태백이 세운 곳으로 역사가 오래된 물의 도시이다.

시에서 일컫는 오나라 왕궁 안의 사람은 중국 최고의 미인이였던 '서시'를 은유하는 문장이다. 물고기도 그녀의 미모에 홀려 가라앉는다 하여 침어沈魚라고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경국지색'이라고 나라를 망하게 한다는 요녀가 있다. 서시가 그 운명을 타고 났는가 보았다.

기원전 6세기, 오나라와 월나라는 몇 대에 걸쳐 전쟁을 치뤘다. 월나라 왕인 구천이 오나라 왕인 합려를 죽였고, 합려의 아들 부차는 아버지와 나라의 원수를 갚기 위해 이를 갈았다. 마른 장작과 섶으로 침소를 만들고, 쓰디쓴 곰의 쓸개를 핥으며 복수를 다짐했다. '와신상담'은 여기서 비롯되었다.

부차는 월나라 최고의 미녀 서시를 발탁해 3년간 갖은 기교를 연마하게 하여 오나라 왕에게 보내었고 서시에게 홀려 정사를 소흘히 한 부차는 결국 신하와 백성들의 신임을 잃고 오나라에 함락되어 역사의 한페이지에 귀속되었다.

사랑은 저잣거리의 추문으로 떠돌만큼 통속적이면서도 그 자체로 순수하며 고귀한 것이다. 어떤 비참한 결과를 맞게 될 것인지 알면서도 그만둘수 없는 것. 맹목적인 사랑에 인생이 파탄이 날지라도 진군을 멈출 수 없는 것.

그리하여 잔인하고도 매혹적인 것이 사랑의 양면성이었던가!
▲ 중국 선종 10대 고찰 중 한 곳인 영은사 가는 길

서호십경을 마저 구경하고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소주에서 세번째로 크다는 식당에 들어섰다. 이미 다른 관광버스가 여러대 주차되어 있었고 회전식 테이블에는 마파두부와 닭구이, 기름에 볶은 야채와 찐밥, 한국식 김치와 같은 여러가지 요리가 준비되어 있었다. 소동파가 즐겨 먹었다는 동파육을 추가로 주문하여 고량주와 함께 흔한 건배제의를 나누고 밥을 먹었다. 음식들의 맛은 무난하였고 돼지고기를 튀긴 다음 향신료와 재차 삶아낸 동파육은 부드럽고 담백했다. 고량주 특유의 냄새에 이맛살을 찌푸리면서도 아가씨들은 홀짝홀짝 술을 잘 넘긴다. 이국에서 낯선 이들과의 만찬은 특별함이 없어도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지기 마련이라는 생각이 든다.

식사를 마친 후 일행들은 발맛사지를 하러가자고 권하였지만 나는 피로함을 핑계로 호텔로 돌아와 짐을 풀어놓고는 홀로 뒷골목 산책에 나섰다.

달은 지고 까마귀 우니 천지에 찬 서리가 내리고
강풍교 고깃배 불빛 바라보며 시름에 겨워 조는데
고소성 밖 한산사의

한밤 중 종소리가 객선에까지 들리누나

장계(張繼)가 풍교야박이라는 시를 쓸 때의 심정이 지금 나의 마음과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소주의 밤은 고요하고 호수의 물결은 잔잔했다. 나뭇잎 스치는 소리, 바람에 찰랑이는 물소리, 고양이가 사부작이 걷는 소리까지도 또렷이 들려왔다. 하얗고 낮은 담벼락을 맞댄 작은집들이 운하를 따라 다문다문 흩어져 있다.

중년의 부인이 양동이의 물을 골목길에 버리면서 낯선 복장을 한 나를 무심한 눈으로 훑어보고는 내부로 사라졌다. 다정한 이들이 둘러앉아 따뜻한 음식을 나누며 담소를 하는 풍경을 상상하며 집들을 구경하며 걷다가 문득 미아가 될 것이 두려워 오던 길을 되짚어 호텔로 돌아갔다. 침대에 누워 쌉쌀한 맥주 한잔을 떠올렸으나 몇 개를 시킬까 잠시 고민을 하다가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왜 그런지는 몰라도 맥주란 것은 한두개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늘 들곤 하는 것이다.

이튿날, 호텔에서 미국식 블랙퍼스트로 간단한 아침을 먹고 가이드의 인솔하에 호구(虎丘)를 찾았다.

호랑이 호(虎)자를 쓰는 호구검지는 춘추시대 오나라 왕이었던 합려의 묘가 있던 곳이다. 합려의 무덤을 만들때 십만에 가까운 인부가 동원되었고 지상의 명검 3,000자루를 함께 묻었다고 했다.

그가 죽은지 270년이 지난후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제가 명검 3,000자루를 찾기 위해 무덤을 파헤치라고 명했다. 병사들에 의해 무덤이 파헤쳐지는 동안 갑자기 무덤 안 어두운 곳에서 커다란 호랑이가 나타나 포효하며 덤벼들었다. 칼을 지키려는 수호신이라 신성히 여겨 발굴은 중단되었고 '호구검지'라 불리우게 되었다고 한다.

이집트 왕의 무덤을 지키는 '케로베로스'의 동양적 설화의 변형이라 여겨져 재미있었다. 이쯤하면 도시관광 지역마케팅의 훌륭한 스토리텔링이다.

이어 녹차재배 하는 곳을 구경하고, 공짜로 나눠주는 보이차를 한잔씩 얻어 마시고는 또다시 관광버스에 실려 광활한 길을 마구 내달렸다. 시내의 외곽지라 짐작되는 곳에 우르르 내려서는 한국식당에서 고등어와 김치를 반찬으로 쌀밥을 먹었다. 그리곤 방문한 곳이 실크를 생산하는 공장이다.

소주는 미인과 실크로 중국전역에서 유명하다고 하였다. 독립된 컨테이너 안에 가설한 스테이지 위에는 학다리처럼 길고 가는 다리를 가진 여인들이 실크로 만든 옷을 입고 음악에 맞춰 겅중겅중 오갔다. 무표정한 얼굴에 권태가 잔뜩 묻어나는 것이 하루에도 똑같은 짓을 몇 번씩 시연하는 것이라 짐작되었다.

미인이 걸친 옷을 입는다고 똑같이 보이지는 않을진데 일행들 몇몇은 모델이 입은것과 비슷한 원피스를 하나씩 구입했다. 중간에 가이드가 진주공장을 또 견학 간다는 것을 피곤하니 다음 행차로 미루자고 부탁하여 졸정원으로 이동했다.

패키지 관광의 특성이 저렴한 여행경비로 사람들을 현혹시켜 최대한 이득을 내는 것임을 모르지는 않았으나 좀 심하다 싶은 생각이 들어 입이 툭 튀어나왔다. 어쩌겠는가.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데 계획을 짜기는 귀찮고 낯선곳의 보호자와 동행인을 구하려고 하니 그나마 손쉽다고 생각한 것이 여행사의 단체관광인 것을. 언제든지 돈만 치르면 내일이라도 이국의 방랑자가 될 수 있다는 값싸고 달콤한 유혹.
▲당나라 육구몽의 저택 졸정원

소주의 정원 중 가장 대표적인 정원으로 꼽히는 졸정원은 당대에 육구몽이란 이의 저택이었는데 그는 정치에는 나서지 않고 밭을 경작하고 차를 재배하며 문인으로 활동을 했다고 한다. 원나라 시절에 대굉사((大宏寺))라는 절이 되었다가, 16세기 전반에 왕경지의 별장이 되었다. 지금의 졸정원이란 이름은 왕경지가 붙였다. 청나라 때에는 관청으로 사용되었고 충왕(忠王) 이수성의 집무실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졸정원이란 이름은 진나라의 반악이 쓴 '한거부'라는 글가운데 '채소밭에 물을 주고 채소를 가꾸는 것도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의 위선이다.'라는 글귀가 있는데 여기에서 따온 것이다. 정원 한쪽에서는 노인들이 띄엄띄엄 흩어져 우슈를 연습하고 있었다. 건축물의 화려함보다 인간적인 소탈함이 묻어나는 그와 같은 장면이 내 마음에 더 들어왔다.
▲ 7세기 당나라의 시인 한산이 기거한 한산사


중국의 4대 정원이라는 명성 탓인지 몰려오는 관광객들로 졸정원은 이내 번잡해졌다. 시장통과 같은 시끌한 분위기 속에 노랑머리의 관광객들과 뒤섞여 가이드의 뒤를 따라 졸졸 쫓아다니다 보니 그만 정신이 까마득해지는 것이었다.

진저리를 치며 서둘러 빠져나와 다시 차를 타고 한산사로 이동했다.

한산사는 육조시대에 세워진 고찰로 당나라 시인 장계의 '풍교야박'이라는 시로 유명해진 절이다. 몇 차례 전란으로 소실된 적이 있으며, 현재의 건축은 청나라 때 중수된 것이다. 한산과 습득이라는 두 고승이 이곳에 머무른 적이 있었는데, 그 중 한산이라는 고승이 주지를 지낸 후 한산사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화려한 색채와 장식성이 강한 꾸밈 덕에 절보다는 고급 요정과 같은 느낌이 더 드는 곳이다. 장계의 풍교야박에 등장하는 것과 같은 한산사의 종소리는 고사하고 속사포같은 가이드의 어눌한 설명을 듣고 있자니 억지로 휩쓸려 떠나온 수학여행의 우매한 중학생과 같은 기분이 들어 한쪽 구석에 조용히 앉아 지친 다리를 쉬었다.

소주 일정의 마지막이라는 호구탑으로 향했다.
호구탑

높이 40m의 언덕인 호구 정상에는 소주의 상징인 호구탑이 있다. 이 탑은 높이 47.5m로 소주 어디에서나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축물이다.

길의 입구에 들어서면 오른쪽에 둘로 갈라진 시검석(試劍石)이 보이는데, 오나라 왕 합려가 천하의 명검을 시험해 보기 위해서 잘랐다는 전설이 있다. 칼로 바위를 갈랐다니 과연 대륙인다운 호방한 '뻥'이다.

천인석(千人石)이라는 평평한 바위에서는 1,000명이 앉아 승려의 설법을 들었다고 한다. 문득 이 풍경들보다 교과서를 읽어내리듯 이 모든것을 줄줄 외우는 가이드가 더 신기해졌다. 가이드 시험을 통과하기가 어렵냐고 물어보니 반색을 하면서 공부가 얼마나 까다롭고 어려운지 모른다고 자기 고장에서는 가이드라는 직업이 모두가 부러워하는 일등직업이자 신랑감이라며 자화자찬을 한다.

두껍고 검붉은 입술을 쉴 새 없이 놀리며 자신감 있게 눈알을 뒤룩거리는 그를 보고 있노라니 얼굴만은 일등이 아니라는 강한 반감이 들어 혼자서 체머리를 흔들었다.

호구탑을 마지막으로 여행의 공식적인 일정이 끝났다. 철도호텔이라는 곳으로 이동하여 슈퍼마켓에서 사온 칭다오 맥주와 땅콩 및 스낵들을 펼쳐놓고는 여행의 마지막 밤을 축하하며 짧은 일정을 함께 한 동행들과 빈말이 섞인 치하를 늘어놓았다.

저마다 떠들어대고 있었지만 얼굴에는 피로가 역력하였고 맥주는 미지근하였다.
수필가 윤혜영

내일이 되면 우리는 한국으로 귀환하여 또 각자가 걸어온 인생에 귀속될 것이다.

관광과 여행의 의미는 어감의 차이만큼이나 천양지차라는 생각이 든다.

관광은 즐기고자 하는 준비된 마음으로 타지의 풍물을 즐기는 것이고, 여행은 밖으로 떠나오되 철저히 자신의 내면으로 매몰되는 것이다.

길 위에서 나는 돌이켜보고 후회하며 끝없이 되돌아간다. 마음을 두고 온 곳, 아무리 애달파도 포기할수 없는 내 인생의 미련, 어지럽게 휘몰아치는 구심력의 광풍처럼.



서용찬 기자 ycseo@morningnews.or.kr        서용찬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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