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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인’은 우락부락 ‘뱃놈’이 아니었다
  • 입력날짜 : 2012. 07.17. 18:51

권력의 뒤안길서 꽃핀 ‘유배문학’ 거제를 빛내다

예전에 ‘거제’ 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뱃놈’ ‘섬놈’ ‘쎈놈’ ‘거친놈’ 등이다. 이웃 통영의 양반(?)들은 거제쪽 방향을 향해 오줌도 안 눈다는 말이 있다. 그네들이 ‘섬놈’ ‘뱃놈’이라고 싸잡아 낮춰 보던 시선을 이제 거둘때가 됐다.

유구한 역사이래 ‘거제’ 만큼 들고 난 사람들이 많은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다양한 삶의 형태가 거제 산천 곳곳에 녹아들어 이제 그 찬란한 문화적 혁명(?)을 이룰때가 된 것이다. 이제 그 속살들을 들춰내는 일만 남았다.

‘유배지’ 하면 거제가 떠 오른다. 왕권 다툼에서 밀려난 왕족들, 붕당 다툼으로 인해 유배와 해배를 거듭한 관료들, 선대의 죄로 인해 길고 긴 유배살이를 하게 된 왕족과 양반들, 그들은 왜 유배되었으며, 유배지에서 과연 어떤 삶을 살았을까?

거제를 ‘역사와 문화의 고장’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꿈을 갖고 있는 거제고전문학연구가 고영화씨는 “거제는 역사문학의 보고다. 반곡서원 일대 유배지 조성, 문동폭포 일대 고전문학지 조성, 거제면 일대 사직단 조성, 거제 유배길 코스 발굴 등 거제의 역사와 문학을 이용한 관광상품화는 지천에 널렸다”고 말한다.

거제, 유배문화 컨텐츠 개발로 ‘역사의 고장’ 탈바꿈

유배는 단순한 형벌 제도가 아니라 정치와 권력 간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사건이었다. 유배는 정치적 도구로 매우 유용하게 이용되었는데, 유배를 가기까지의 과정에서부터 유배형의 수준, 풀려나는 시기, 이후의 생활까지 모두 그때의 정치 논리에 따라 결정됐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유배 관련 내용이 5860여건 나온다. 이 가운데 빈도수가 많은 유배지가 40여개이고 5위까지는 모두 섬이다. 빈도수에서 거제도가 제주도에 이어 2위지만 문헌상 유배자 수로는 거제가 500여명으로 최고로 많다.

고영화씨는 거제에서 유배문화에 대한 관심이 저조한 이유는 ‘거제도의 자주적인 문화가 아니라는 회의감’과 ‘거제는 유배지라는 나쁜 이미지가 각인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한 몫을 했다고 지적했다.

고영화씨는 “고려시대 정서와 조선시대 정황은 거제에서 13년을 살았고 이 당시 거제로 유배 왔던 사람들이 최소 1000여명 이상이다. 그들과 ‘거제인’들이 함께 만들어 낸 문화가 바로 ‘거제 유배문화’”라고 밝혔다.

그는 “거제와 관련된 유배문학 자료는 1000페이지가 넘는다. 여기에다 거제고전문학도 140여 페이지에 달한다. 민요 설화 등을 합친다면 엄청난 양의 ‘거제문학의 자산’을 가질 수 있다. 고전사료에 상상력을 보태 현대에 맞게 재조명 한다면 ‘거제’는 새로운 컨텐츠로 각광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변방의 섬 거제, 이제 주체적인 정체성 되찾아야

거제의 역사는 이 땅의 역사에서 항상 변방에 속했다. 섬이라는 지정학적 특성을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섬과 바다’라는 공간 인식을 근간으로 예부터 ‘황폐한 땅’ ‘야만인들이 득실거리는 땅’으로 인식돼 왔다.


거제의 역사는 중앙의 역사서술에 따른 입맛에 따라 휘둘려 왔다. 고대로부터 해상교류의 거점로인 거제 남동부해안인 명진‧송변‧아주현에 거주하던 주민들을 해적으로 둔갑시켜 800여명 이상을 합천과 진주 등지로 분산 거주시킨 사실이 이를 뒷받침 하고 있다.

정사의 기록은 당시 중앙 지배층의 편향된 인식의 산물이다. 그게 다 사실일 순 있어도 진실은 아니다. 어쩌면 민중의 이야기가 진실에 가까운지도 모를 일이다.

역사상 최다 유배자를 품었던 거제는 이들이 거제를 떠난 후 거제의 아름다운 경관과 뒤늦게 깨달은 거제인의 따뜻하고 깊은 심성을 잊지 못해 대부분 거제에 대한 연민과 찬사의 글을 남기게 된 것은 이러한 까닭일테다.

-계룡산 / 조익찬
진귀한 계룡산 겹겹의 봉우리
올라가 노닐다 날 저무니 오직 동쪽에 달만 떴구나
앉은 바위에서 바라본 경치는 천년의 바다로다
험한 길에 젖은 땀 만리 바람 불러 사라진다

-판옥선을 타고 거제를 다니다가 / 이광윤
끝도 없는 바다 물결 허공에 잠겨 푸른데
일백 장골이 먼 바람 끌어 당겨도 돛대가 위태하다
고각의 한 소리로 푸른 기운 뚫고
물고기와 용이 치켜들고 춤추니 해 저물 무렵이네

수많은 용이 머리 들고 바다 가운데 두둥실
단풍과 국화는 서리 맞아 취하니 눈에 가득 가을일세
오늘 밤 조각배를 어디에다 머물꼬
머리털 하나로 산이 무성하니 여기가 아주땅이라지

-화경 / 이행
무수한 이름 없는 꽃 저마다 피어있고
산 오르는 작은 길은 짐짓 구부러져 있도다
남은 꽃향기 봄바람 향해 쓸지 말아라
혹 한가한 사람 술 가지고 올지도 모르니

예기 제통편에서 “선조에게 아름다움이 있는데도 후손이 알지 못하면 밝지 못한 것이다. 알면서도 전하지 않는다면 어질지 못한 것”이라 했다. 중앙의 역사관에서 벗어나 보다 구체적인 ‘거제의 사실’들이 정리될 때 주체적인 정체성을 되찾을 수 있다.

고영화씨는 거제역사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지역역사 본연의 모습을 지역공동체를 통해 밝혀내야 한다. 거제역사의 탄력성과 다양성을 찾기 위해서는 ‘거제적인 것’이 무엇이냐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가장 거제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광룡 기자 newseye2000@naver.com        윤광룡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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