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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한국전쟁과 분단의 트라우마
  • 입력날짜 : 2011. 03.03. 20:19
한국전쟁과 분단의 트라우마(전쟁으로 인한 외상성 신경증)를 주제로 쓰여진 학술서가 발간됐다.

한국 근 현대사 연구에 매달려온 전갑생씨가 새로운 자료를 통해 기존의 시각을 재해석한 다른시각으로 펴냈다.

‘한국전쟁과 분단의 트라우마’ 는 ‘선인’이 펴냈다.

전쟁 트라우마
과거의 전쟁은 현재에도 그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한·미 정권은 전쟁이라는 유령을 부활시켜 긴장과 불안 그리고 트라우마(PTSD,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를 자극하고 있다.

빨갱이―반공 트라우마
단어의 생명력은 6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우리를 위협한다. 원래 빨갱이(Commie, Red 혹은 赤色分子)란 ‘공산주의자’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었으나 현재 한국사회에서는 여기저기 사용된다. 이미 유물로 인식된 1950년 매카시즘(McCarthyism)은 한국에서 다양하게 변화·발전해 오고 있다.

분단 트라우마를 넘어

1948년 두 국가 체제가 시작된 이후 우리에게 던져진 과제는 분단체제를 청산하고 공생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다. 분단 트라우마는 전쟁, 빨갱이, 반공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극복될 수 있다. 뿌리 깊은 갈등괍 불안은 정권이 바뀐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우리 속담에 ‘솥뚜껑 보고 놀란 가슴 자라 보고 놀란다’는 말이 있다. 11·23 연평도 사건 이후 섬 주민이나 일부 국민들은 국군의 폭격 연습을 보면서 ‘혹시 북한이 맞대응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전쟁 트라우마에 연일 시달리는 국민들은 화살을 현 정부에 돌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선제 타격’이라는 원칙을 내세우고 ‘분단국가에서 군사훈련은 당연하다’며 더욱 불안을 부추기고 있다.

과거의 전쟁을 되돌아보고 숨겨진 진실을 찾아내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일까. 앞으로 정부는 어떤 정책을 펼쳐 트라우마를 넘어설 것인지를 진정으로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 해결방안 중 하나는 아직도 은폐된 진실과 거짓의 역사를 찾아내는 일이다. 이 책이 작은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전쟁 트라우마

제1부 ‘나는 빨갱이가 아니다’ 편은 한국전쟁 중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 부친 김용주(주일한국대표부 대사)가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서 한국전쟁 중 윌리엄 시볼트(주일미국정치고문), 요시다(일본내각수상)와 협의해 ‘빨갱이’로 지목된 재일조선인들의 강제소환에 적극 나섰다.

그는 일제강점기 1937~1945년 포항읍회의원을 지냈으며, 1941년 조선임전보국단 경북위위원회 결성식에서 ‘황군(일본군) 장병에게 감사의 전보’를 보내자고 제안해 태평양전쟁 협력에 나섰다.

또한 전쟁 중 쓰시마에 거주한 재일조선인들이 어떻게 북한으로 가게 되었는지, 정쟁 와중에 밀항했던 사람들을 다루고 있다.

빨갱이―반공 트라우마

거제도포로수용소 내의 대한반공청년단은 포로들의 자체적으로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필자가 발굴한 자료에 따르면, 1951년 7월 23일 법무부장관은 국무총리실에 보낸 일일보고서에서 “수용소에 공작원을 파견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7월 26일 대통령비서실과 미군 제8군단에 통보됐다. 그 이후 수용소 내에는 ‘반공포로’가 탄생하게 되었다.

분단 트라우마를 넘어

지난해 4월 이명박 대통령이 천안함 사건과 관련하여 전두환, 김영삼 양 전직 대통령을 만나는 자리에서 YS는 “모친이 간첩에게 살해당했다”고 소개했다. 지금까지 알려진 YS의 모친 살해사건은 북한에 의해 파견된 고정간첩에 의해 저질러졌다고 정설처럼 되어 있다.

이 사건의 주모자이자 ‘간첩단 수괴’로 알려진 윤병윤(경남 거제시 연초면 다공리)은 1961년 9월 15일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다고 언론과 역사에 기록돼 있다.

그러나 최근 필자가 국가기록원에서 발굴한 자료에 의하면, 1969년 부산형무소 「윤병윤 명적표」에 1961년 7월 21일 경찰에 의해 체포된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그는 1969년 7월 헌병대에 이첩되어 총살됐다. 윤병윤은 형무소에서 “나는 살해사건과 관련 없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고 한다.

이 사건과 관련된 윤병윤과 같은 마을의 청년 7명은 경찰의 고문에 거짓 자백으로 최대 징역 15년에서 최소 징역 6개월까지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고 말하고 있다. 아직까지 YS 모친 살해사건은 50년이 지난 지금도 미제(?)로 남아 있다.



오정미 기자 webmaster@morningnews.or.kr        오정미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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