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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되짚기] 차별과 저항의 역사 '백정'
인간백정으로 비하되던 백정은 원래 양인
일제때 형평사 조직 신분 차별 철폐 운동
  • 입력날짜 : 2005. 01.02. 18:13
백정은 통행증 없이는 이동을 할 수 없었다. 명주옷을 입거나 가죽신을 신지 못하였으며, 남자는 검은 갓을 쓰지 못하고, 여자는 비녀를 꽂아서 머리를 올리지도 못하는 등 의복과 복장에서도 차별을 받았다.
지금 고깃간 주인들을 백정이라고 부르면 다들 펄쩍 뛸 거다. 사실 백정은 고기 장수를 말하는 게 아니라 도살업에 종사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흔히 썼으니까 애꿎은 정육점 아저씨들을 끌어들이면 곤란하다.
그러나 지금은 도살업자도 백정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오늘날 직업으로서의 백정은 사라졌고 끔찍한 살인 범죄를 저지른 범인을 ‘인간백정’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비유어로 쓰는 백정만 남아 있다.
그런데 알고 보면 백정은 원래 도살업자를 뜻하는 말이 아니었다. 중국 수나라에서 백정은 일반 백성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고 고려시대에 중국에서 그 말이 전래되면서도 그냥 백성이라는 뜻으로 쓰였으며 조선 초까지도 그랬다.
백성(百姓)과 백정(白丁)은 우리말로는 비슷해도 한자로는 전혀 다르다. 그럼 왜 백정이라는 이름에 굳이 흰 백자를 썼을까. 그건 농토가 없는 백성이기 때문이다. -‘백’은 ‘하얗다’라는 뜻도 있지만 ‘없다’ ‘아니다’라는 부정의 뜻도 있다.-
백정은 비록 일반 농민으로 대우받았지만 국가에서 부여하는 직역이 없었으므로 경작할 토지도 받지 못했다. 직업이 없으니 봉급을 받지 못한 것이라 보면 된다. 직업을 구하지 못한 실업자는 자조적으로 ‘백수 건달’이라고 자칭하지 않는가.
백정은 노비가 아닌 양인(良人)의 신분이지만 일반 농민에 비해서는 처지는 위치였다. 이따금 국가 비상시에는 백정도 군대에 편입해 정규군을 지원하는 예비군을 구성했고 이 경우에는 이들에게 일정한 토지를 주기도 했다.
고려시대에는 신분상으로 어엿한 양인이었던 백정을 졸지에 천인(賤人)으로 전락시킨 사람은 바로 조선 세종이다. 오늘날까지 가장 존경받는 임금인 세종대왕이 양인을 천인으로 만드는 그런 일을 일부러야 했겠는가.
고려 사회의 천인들로는 노비가 거의 대부분이었고 그 밖에 광주리 따위를 만드는 유기장, 광대 노릇을 하던 재인, 그리고 화척(禾尺)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바로 화척 때문에 백정은 천인이 된다.
이들은 여진이나 거란 등 북방민족 출신인데 고려로 귀화한 사람들이다. 일반 백성들과 융합하지 못하고 자기들끼리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그들은 걸핏하면 왜구로 위장해 민가나 관청을 약탈하거나 거란이 침입해 들어올때 길잡이 노릇도 했다.
당연히 정부에서 그들을 골칫거리로 여기고 탄압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범죄 행위가 어려워지자 일반 백성들이 꺼리는 궂은 일을 생업으로 삼고 살았는데 그게 바로 도살업이다. 수렵민족 출신답게 짐승의 고기와 가죽을 다루는 기술이 능했던 탓이다.
세종은 화척의 지위를 올려주기 위해 이들을 양인으로 대우하는데 국가가 부여한 직책과 토지가 없으니 백정(당시에는 양인신분)에 편입할 수 밖에 없었다. 화척은 마침내 양인이 되었지만 일반 백성들이 그들에 대해 갖는 이미지가 정부 시책처럼 그렇게 쉽사리 바뀔 수는 없다. 백성들은 그들을 기존의 백정과 구분하기 위해 ‘신백정’이라 부르며 여전히 백안시했다.
전과자의 재범률이 높은 건 일반 사람들이 그들에게 사회 적응의 기회를 주지 않기 때문이라는데 그건 신백정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화척은 백정으로 신분이 상승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회의 골칫거리였다.
신백정의 악명이 높아지자 원래 백정들도 백정으로 자처하기를 꺼리게 되고 점차 신백정은 그냥 백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이들의 대표적 생업인 도살업과 뗄래야 뗄수 없는 관계를 지니게 됐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정부에서도 이들을 천인으로 분류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제도적으로 신분상승을 시켰던 것이 오히려 신분하락을 가져 온 셈이다.
천인이 된 백정은 무려 400여년이 지난 뒤인 1894년 갑오개혁으로 노예제가 폐지되면서 비로소 천인 신분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이때에도 역시 정부시책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들을 보는 시선이 문제가 된다.
제도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도 일반 평민들과 통혼할 수도 없었고 관습상 여전히 천인의 대우를 면하지 못한다. 하지만 세상은 달라졌고 이들에게는 정치적 자유가 주어졌다. 그렇다면 이제 정부가 해줄 일은 없고 스스로 일어나야 한다.
이들은 1923년 ‘형평사’라는 전국 단체를 조직하고 백정이라는 이름과 백정에 대한 신분 차별 철폐, 그리고 직업의 자유를 외친다. 하지만 조선의 봉건적 지배질서를 그대로 유지하는 정책을 써 왔던 일제는 호적을 비롯한 각종 공문서에 붉은 점으로 표시를 해 여전히 백정을 차별한다.
이제는 백정에 대한 사회의 인식만이 문제가 아니라 그런 인식을 더욱 조장하고 있는 진정한 적, 일본 제국주의가 목표가 된다. 암울한 식민지 상황과 맞물려 이들의 운동은 차별 철폐와 직업의 자유를 넘어 사회주의 운동, 민족 해방운동으로 나아간다.
형평사는 조선청년동맹, 조선노동총연맹 등 사회주의 청년 단체와 융합되면서 발전적 해체를 하기에 이른다. 오늘날 ‘인간백정’이라는 말만 남고 실제 백정이 완전히 사라진 건 전적으로 그 덕이다.



모닝뉴스 기자 webmaster@morningnews.or.kr         모닝뉴스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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