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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은 과연 옥포해전에 참여했는가
고 원용목씨 원균 바로잡기 대표적 인물
  • 입력날짜 : 2004. 10.04. 08:52
이순신은 과연 옥포해전에 참여했는가. 우리에게 다소 의아스러운 물음이다.
이순신이 옥포해전에 참여했는가에 대한 논란은 권율, 이순신과 함께 임란 최대 공신 가운데 한 사람인 원균이 모함꾼도 비겁한 장수도 아닌 이순신과 역사적 라이벌이라는 사실이 부각되면서 다시 관심을 끌게 될 것으로 보인다.
거제지역출신 향토사연구가였던 고 원용목씨는 지난 89년께 200자 원고지 26쪽 분량의 친필원고를 남겼다.
이순신에 비해 초라하기 짝이 없는 원균 바로잡기는 그에게 있어 필생의 소원이었다. 원용목씨는 남북한의 선조실록과 선조수정실록 등 조선사 연구, 특히 임란당시의 시대상황과 우리지역의 고대사에 대한 관심이 남 달랐으며 ‘거제가 독로국이 아니었다’는 일관된 주장을 해온 대표적 인사였다.
거제의 고로쇠 수액 축제도 원용목씨의 공이 컸다. ‘거제문화사’ 도 그가 남긴 족적 가운데 하나다. 그가 남긴 대표적 물음 가운데 하나가 ‘이순신은 과연 옥포해전에 참여 했는가’ 였다. <모닝뉴스>는 10년 넘게 묵혀둔 이 의아스러운 물음을 그의 친필원고를 통해 소개한다.
이순신 그는 민족의 대 영웅인가
우리가 배우기로는 임진란의 풍전등화 같은 전국(戰局)을 임진년 5월7일 잘 정비된 이순신 군(軍)의 최초의 출동으로 옥포선창에서 일격을 가해 역전의 실마리를 잡았다고 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순신(李舜臣)이야 말로 임진란을 승리로 이끈 민족의 대영웅이 틀림없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이런식으로 국민학교(초등학교) 학생들의 읽을거리로부터 중학교국사교과서, 고등학교국사교과서, 대학의 교양국사가 일관되게 주장해 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 것이다. 백성들이 영리해진 것이다.
영리한 백성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순신의 전공(戰功)들이 당시의 상황과 지형들과 역사 사실들이 달라도 한참 다르다는 것이다.
‘원균정론’ 이란 책을 쓴 이재범씨는 지형상황과 배 상황이 안 맞는 것을 지적하고 ‘이순신의 기록은 도저히 우리의 상식으로는 풀기 어려운 문제에 속한다. 왜냐하면 거제도의 송미포(松未浦)는 그 명칭이 松美浦, 蘇泰浦, 所珍浦 또는 송진포(松眞浦)라고 불렀으며 지금의 거제도 장목면 송진포리의 지명이다.
이 송진포는 거제도 북단에 있으며 여기에서 천성 가덕으로 가자면 우선 동쪽으로 가다가 거제도 동북의 끝에 이르면 다시 북진을 해야한다. 그러나 옥포는 거제도동북단에서 천성 가덕과는 정반대방향인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먼 거리에 있어 적선의 유무를 전혀 볼수가 없는 거리에 있다.
특히 옥포의 선창은 지리적 조건으로 그 외양에서는 옥포의 선창이 보이지 않을뿐만아니라 내양에 들어가서도 50m정도로 근접하지 않으면 선창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한 옥포선창에 있는 적선을 무슨 재주로 천성 가덕으로 가다가 발견하였단 말인가’ 하고 아주 높은 음성으로 반문하고 있으며 부산의 박수연씨는 장승포시의 해성고교 교지 ‘은행’ 8호의 ‘거제수논쟁’난에 ‘거제도에 관련된 너무나도 사실에 안 맞는 것으로 이순신의 옥포파왜병장을 들수가 있다.’
‘한산도(당포의 착각인 듯)에서 5월6일 35㎞의 거리인 거제도의 장목면 송진포까지 새벽 2시에 출발하여 저녁 9시까지 부지런히 갔으나 날이 저물어 더 못가고 송진포에서 밤을 새우고 5월7일 새벽같이 일어나서 적이 있다는 가덕도를 향하여 가다가 정오 무렵 옥포선창에 대어놓은 적선을 발견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윤씨(논쟁상대자 해성중교감)가 근무하고 있는 해성중고의 최고 옥상에서 눈 딱고 보아도 당시(임진란)의 옥포선창인 지금의 옥포의 조라마을회관 지점이 보이지 않는데 말이다. 하물며 가덕도로 가다가 옥포선창을 볼수는 없는 것 아닌가.’ 하고 역시 강력한 톤으로 이순신이 옥포해전에 참여하지 않은 쪽으로 묻고 있다.
울산대학교의 이정일교수의 ‘원균론’ 에서도 ‘원균은 옥포해전을 비롯한 곳곳의 싸움에서 전필선등(戰必先登)하여 다대한 전공을 세웠던 것이다’ 라고 주장하며 임진년 5월10일자 ‘평양행재소’에 보고된 민종신의 ‘원균 적선 50척 당파’라는 보고를 ‘옥포해전의 보고’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육군대학교 부총장 어태우씨의 ‘임진수전의 원균과 이순신’ 이란 책에도 특히 옥포해전은 원균의 주도하에 진행된 해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과연 이순신은 이들 저씨(諸氏)들이 품기는 주장처럼 옥포해전에 참여하지 않은 것인가. 필자의 견해도 동감으로 이순신이 옥포해전에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주장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은 조건 때문이다.
이순신은 옥포해전의 선봉장이 누구인지 몰랐다
이순신은 옥포해전을 했다고 하면서 옥포해전에서 원균의 아들 원사웅이 선봉을 서고 지세포만호가 전사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원사웅은 당시 나이 18세였고 원균이 다섯딸을 낳은 후 막내로 낳은 외아들이며 만석군부자 원후랑의 장손이었다. 그런 아직 어린귀한 청년이 선봉이 되어 적을 공격하는 걸 이순신이 옥포해전에 참여했더라면 보았을것이고 그랬다면 이순신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을 것이다.
목숨을 건 싸움에서 선봉이란 남의 사표가 되는 것이므로 대단히 장한 일인 것이다. 우리가 신라의 관창 청년을 잊어버리지 못하는 것은 그가 신라군의 선봉이 되어 많은 병사의 모범이 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동족간의 전쟁이었기 때문에 유감이지만, 일본에서 노기마레스케 대장을 일본민족의 영웅으로 받드는 것도 로일전쟁의 여순,대련공격시 그의 두 아들을 앞장세워 전사케 하면서 승리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이순신은 원균을 비난하면서 10여세된 아들을 전공에 부쳤다고 무함을 하다가 이 사실의 사실여부를 조사하러 나온 병조판서 이덕형에게 탄로되어 이순신은 말문이 막혔다고 선조실록 30년2월4일자는 적고 있다.
한백록은 임진초기해전의 몇 안되는 장수인 지세포 만호이다. 이장령이 옥포해전에서 전해를 했는데 이순신이 옥포해전의 부근에라도 참여했더라면 어찌 중요한 해방진(海防鎭)인 지세포만호 한백록장군의 죽음을 모를수 있겠는가. 이순신은 임진년 5월5일 6일 당포에서 영등포만호 우치적 옥포만호 이운용과 함께 지세포만호 한백록도 함께 장도에 올랐다고 적고 있는 것이다.
적의 무력이 우리보다 우세했다
적의 무력이 우리측보다 훨씬 우세했다. 신체의 상반부를 노출하지 않고는 조준이 안되는 활이 우리측 무기의 주종이었는데 반하여 적은 몸을 감추고 쏠수 있는 총을 가지고 있었다. 적의 총은 성능시험이 이미 끝난 가볍고 정확한 조준이 되는 총이었다.
풍신수길이 임란발발 17녀전에 노부나가의 장수로서 나가시노싸움에서 다케다군을 전멸시킨 그 총이었으며 그들의 총은 철포의 대량생산체제를 갖춘 큰 공장에서 대량제조되었다.
그총을 가진 적군과 조우하면서 아군측의 피해가 없었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순신은 ‘옥포파왜병전’에서 ‘순천대장선의 사부이며 순천에 사는 정병 이선지가 왼쪽 팔 한곳에 화살을 맞아 조금 상한 것 외는 전상자가 없습니다’ 라고 적고 있다. 화살은 우리의무기이므로 이순신은 우리측의 피해없이 적선 40여척을 공파한 것이다.
이런판이니 어떻게 이순신이 옥포해전에 참여했다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거리나 시간이 맞지않다
거리상으로나 시간상으로 이순신의 행적이 도저히 불가능하다. 송미포에서 옥포까지는 28㎞이다. 옥포에서 영등포까지는 20㎞이다. 또 영등포에서 마산합포까지는 27㎞이다. 합포에서 의창군 구산면 남포까지는 15㎞이다.
이순신은 그의 난중일기 병신년 7월21일자에 ‘통신사가 청하는 표범가죽을 가지러 본영에 배를 보냈다’라고 적고 있고 그 화급한 임무를 수행라는 곽언수가 7월24일 어둘녘에 만 4일만에 돌아왔다고 적고 있다.
한산도에서 75㎞인 여수본영까지를 85시간이란 긴 시간을 소모하여 75㎞를 왕복한 것이다. 예를 들자면 수십번을 들 수가 있다. 그런데 제일느린배를 기준하는 합동진군이 비록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진행됐다 하더라도 중간에 2번 3번 전쟁을 하고 저녁밥을 준비하기 위하여 나무 준비하고 물까지 긷다가 어떻게 90㎞나 진군한단 말인가.
이것도 이순신이 옥포해전에 참여하지 않은 증거가 된다고 본다.
방향이 맞지않다
방향이 안 맞는다. 이재범씨나 박수연씨의 주장과 같이 송진포에서 천성가덕으로 가다가 옥포선창을 보았다는 것은 보통 거짓말이 아니다. 옥포선창은 멀지않은 옛날에 있었던 옥포굴강을 말한다.
옥포굴강은 지금의 부산행 여객부두선창에서도 전연 보이지 않는 곳이다. 옥포선창이 관련된 장계모순 때문에 몇 년전부터 거제도의 외해를 돌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외해로 돌았다면 시간이 더더구나 안맞을 뿐 아니라 역시 옥포선창이 안보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이순신은 옥포파왜병전에서 옥포해전을 하고 영등포전양으로 물러나와서(강조하고 있다) 군졸들에게 땔나무 하는 일과 물긷는 일을 명령하고 밤을 지낼 준비를 하다가 또 하오 4시경 멸지않은 바다에 왜대선 5척이 지나간다하므로 마산합포까지 쫓아가서 왜적이 육지로 올라간 빈 배들을 남김없이 격파했다고 적고 있고 밤중에 노를 재촉하여 창원땅(당시는 진해현 소속이었다) 남포에 대어 결진하여 밤을 지냈다고 적고 있는 것이다.
그토록 빠른 배를 두고 이순신은 75㎞의 여수본영을 오가면서 갈때도 이틀, 올때도 이틀, 그리고 진주에서 만나자는 이원익을 찾아 갈때도 겨우 55㎞ 이것만 갈때도 이틀, 올때도 이틀씩 걸리고 있다.
이순신이 공무로 나가면서 제일빠른 배를 탓을 것은 당연한데 왜 이틀씩이나 걸렸으며 옥포해전시는 느린배를 기준했을터인데 어째서 그처럼 빠른가 이다. 이것도 이순신이 옥포해전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된다.
선조실록 초기전공은 허위암시
선조실록의 기록들이 이순신의 초기전공이 허위임을 강력하게 암시하고 있는 사실이다. 선조실록 25년 8월24일자 기록은 ‘비변사에서 장계를 올렸습니다. 경상도 원균이 올린 승전장계는 전일 이순신이 올린 한산도(옥포의 오기)등지의 싸움과 같은 장계입니다. 싸움의 대소에 따라 반드시 차등이 있어야 하겠는바 여기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적을 베인 것으로 기준해 보면 전력을 다하여 혈정을 하였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라고 하고 있으며 선조실록 30년 1월27일자 기록은 ‘이순신은 얌전한체 하나 다만 속임수가 많아서 잘 싸우려하지 않는다’ 던가 선조실록 36년 6월26일자 기록 ‘원균이 사로잡은 적장의 누선이 도로혀 이순신에게 빼앗겼다’ 는 기록등과 선조실록 36년 4월21일자 기록 ‘이순신은 임진년에 경상우수사 원균과 더불어 거제양중에서 적선 50여척을 무찔렀다. 그때 그 해전의 작전계획과 선봉은 모두 원균이 한 것이었다.
대첩이 있은 뒤 원균은 연명으로 장계코자 하였더니 순신은 밤을 타서 행조에 장계하였으되 전공을 모두 자기가 한양 과장되이 보고하고 원균의 공이 없다 고 하는 기록등으로 미루어 보면 이순신이 옥포해전에 참여하였다고 인정할 수가 없다.
임란초기에 과연 전쟁을 했다면
이순신이 임란초기에 과연 전쟁을 했다면 그 실력으로 얼마든지 전쟁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조정에서 이틀이 멀다고 전쟁을 독려하러 선전관을 한산진영에 내려 보냈다. 그러나 이순신은 날마다 활이나 쏘고 짐승이나 잡아 포식하며 을미년 2월27일 원균이 한산진영을 떠난이후 전쟁을 한 사실이 없다.
우리역사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임진난의 18차의 해전중 원균이 전사하고 난 후인 노량전쟁을 제하고는 전부 원균이 참전을 했다. 이런 사실과 병신년 12월12일자 부산진적군영에 불을 질러 당시 있지도 않은 적 가옥 1천호 적 화약고 2채, 적 잡물창고 및 양식 2천600석등을 불살라 버렸다고 조정에 허위보고를 했다가 탄로가 나서 정유년 2월26일자 조정을 한없이 속인죄로 잡혀간 사실들을 비추어보면 이순신이 옥포해전에 참여했다는 것은 전혀 신빙성이 없다는 주장이다.


모닝뉴스 기자 webmaster@morningnews.or.kr         모닝뉴스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9 개)
독 자 의 견 제 목이 름작성일
9선조실록과 수정실록 의 허와실용석2009.10.07 (07:49:34)
8어이없고 개념없는 글역사지킴이2008.01.26 (13:31:38)
7활과 조총의 사거리에 대한 기본개념도 없는 사람이훗..2006.11.27 (12:27:52)
6읽어볼수록 가관이네..2006.11.27 (12:13:13)
5한가지 더...2006.11.27 (11:56:26)
4기존 연구자료는 얼마나 훑어 봤는지...2006.11.27 (11:39:36)
3풋.. 그는 대단한 영웅이죠..그린2005.04.19 (15:04:33)
2도대체 뭐가 재조명인지 모르겠네..초보2005.03.17 (01:38:46)
1원용목씨를 재조명 해 주세요성병원2004.10.07 (06:4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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