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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되짚기] 어부 문순득의 멀고 먼 표류기
  • 입력날짜 : 2004. 08.21. 11:24
천년 전의 시인 최치원은 망망한 바다 위로 떠가는 배를 바라보며 이렇게 노래했다.
돛달아 바다에 배 띄우니/오랜 바람 만리에 통하네/뗏목 탔던 한나라 사신 생각나고/불사약 찾던 진나라 애들도 생각나네/해와 달은 허공 밖에 있고/하늘과 땅은 태극 중에 있네/봉래산이 지척에 보이니/나는 또 신선을 찾겠네/
이 시는 바다를 소재로 한 우리나라 시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니 외교를 위해 먼 나라로 가던 사신도 생각나고, 덧없는 욕망 때문에 불사약을 찾아 세월을 헛되이 보낸 진나라 사람들도 생각나는데, 나는 그저 욕심 없이 세상을 관조하는 신선이 되고 싶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전혀 다른 바다가 있다. 폭풍우가 몰아치고 천둥 번개가 치는 바다, 그야말로 일엽편주(一葉片舟)가 되어 생사가 오락가락 하는 때의 바다이다. 바다는 인간에게 어디 네 목숨이나 잘 지키는지 보자 한다. 이런 바다에서 물귀신이 되지 않고 살아남으면 그에게는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다.
우리 옛사람 중에 이런 무서운 폭풍우 속에서 살아남아 그 기록을 남긴 사람이 있다. 먼 이국 땅을 표류하며 이들이 남긴 기록을 '표해록(漂海錄)'이라 한다. 그 중 가장 오래된 최보의 '표해록(1488년)'을 비롯해 6편 정도의 표해록이 있다.
이들의 주요 기착지는 중국, 류우쿠우, 일본 등지이며 그 사연을 보면 바다에 고기 잡으러 나갔다가 풍랑을 만나거나, 과거 시험을 보러 가다 폭풍우에 길을 잃는 등 다양하다.
이 중에서 가장 먼 거리를, 가장 오랫동안 헤매다 고향 땅으로 되돌아온 사람은 어부 문순득이다. 그는 양반이 아니었으므로 기록을 남기지 못했다. 그러나 마침 그곳에 귀양와 있던 정약전이 1805년에서 1816년 사이에 문순득의 이야기를 듣고 표해록을 썼고, 1818년 또 다른 귀양자 유암이 이를 보충해 역사에 남겼으니, 그 전말은 이렇다.
어부 문순득은 소흑산도에 사는 어민이었다. 1801년 12월에 그는 작은아버지와 동료 네 명과 홍어를 사러 남쪽으로 수백 리 떨어진 태사도로 간다. 거기서 홍어를 사서 1802년 1월 18일 돌아오는 길에 그만 풍랑을 만나 표류를 시작했다.
방향을 잃고 풍랑 속에 떠밀리다가 약 2주 후에 육지에 도착했는데 유구국(琉球國), 즉 류우쿠우였다. 류우쿠우는 일본 남쪽 북위 26도 지역에 있는 오키나와 제도의 섬을 말한다. 제주도가 북위 33도 지역이니까 태평양 남쪽으로 한참을 떠밀려간 것이다. 이 나라는 조선에 사신을 보내오기도 했었다. 문순득 일행은 유구국 양관촌에 닿아 거기서 머물게 되었다.
유구국에서 9개월을 머문 일행은 그해 10월 7일 3척의 배로 중국을 향해 출발했다. 당시에는 유구국과 조선을 오가는 정기 배편이 없었으니 어쨌든 조선쪽으로 가까워지는 배편이 있으면 탈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이 배가 다시 폭풍우에 떠밀려 표류하게 됐다. 다행히 죽지 않고 이번에도 육지에 닿았는데, 그 곳은 여송(呂宋), 즉 필리핀의 로손섬이었다. 이때가 1802년 11월 1일이다. 이번에는 3주 정도를 헤맨 것이다.
이들은 여송에서 이듬해 3월까지 머물렀다. 3월 16일, 일행 여섯 명 중 네 명은 먼저 출발하고 문순득은 함께 탔던 나무꾼 아이 김옥문과 함께 중국으로 간다. 다행히 이번 항해는 무사히 끝나 광동에 도착했다. 이제 대륙에 도착했으니 육지를 통해 조선에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참으로 머나먼 여정이었다. 광동에서 출발해 북경, 의주를 거쳐 서울로 오기까지 무려 2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서울에서 다시 배를 타고 고향 소흑산도에 도착하니 이때가 1805년 1월 8일이었다.
다른 표류기도 있지만 문순득 만큼 먼 거리를 오래 헤맨 사람은 없다. 1801년 12월에 고향을 떠나 1805년 1월에 고향에 돌아오니 3년 2개월이 걸린 셈이다. 그에게 바다는 '신선을 찾는 곳'이기는커녕 폭풍우가 늘 일어나는 무서운 곳이다.
다행히 그는 바다에 빠져 죽는 대신 당시의 조선인들은 가보지 못한 류우쿠우, 필리핀, 중국 등지를 견학하는 행운을 얻었다. 후에 정약전을 만나 기나긴 여행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었던 것이다.


모닝뉴스 기자 webmaster@morningnews.or.kr         모닝뉴스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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