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광 칼럼] 문화 홀대 … 부끄러운 거제
  • 입력날짜 : 2019. 04.09. 10:03
윤일광 (시인·거제문화원 수석 부원장)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거제에서 태어나고 거제에서 자란 한마디로 ‘섬놈’입니다.

섬놈이라고 하니 어딘가 낭만이 엿보이는 순수함이 있어 보이지만 기실 알고 보면 사람 속 뒤집어 놓는 소리입니다.

그 속에 도사리고 있는 뜻은 ‘고기 배 따 먹고 사는 놈’이라는 비아냥거림과 멸시, 그리고 조롱이 섞인 말입니다.

전에 거제사람들은 고성이나 통영사람들로부터 공공연하게 그런 말을 듣고 자랐습니다. 이건 숨길 수 없는 뼈아픈 과거입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섬사람을 천박하게 여겼는지 그때는 몰랐습니다.

보릿고개가 있었던 시절, 먹고 사는 것으로 치면 섬놈이 육지의 촌놈보다 덜 굶고 살았는데 왜 그런 말을 들어야했는지, 그리고 그런 말을 해도 변명 한마디 하지 못한 연유가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사람은 자기보다 집안을 들먹거리며 욕하면 아무리 성인군자라도 욱하는 성질이 터져 나오기 마련인데 무엇이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어 바보처럼 침묵해야 했을까요?

그건 단 한 가지 까닭입니다. ‘너희 섬놈들에게 무슨 고유의 정신문화가 있느냐’는 겁니다. 먹고 사는 일에 몰두해서 깊은 삶의 통찰과 사유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그런 주제에 무슨 문화가 있느냐고, 문화가 없는 족속은 사람대접을 해줄 수 없다는 겁니다. 자기들은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자랑스러운 정신, 곧 문화를 향유하고 있다는 우월감으로 우리를 얕본 겁니다.

문화(文化)가 무엇입니까? 문화는 자연발생적이 아니라 자연상태의 사물에 인간의 작용을 가하여 그것을 변화시키거나 새롭게 창조해 낸 인위적 생활양식이자 상징체계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영어권에서는 문화를 ‘culture’라고 하는데 그 어원은 땅을 갈아 곡식이나 채소 따위를 심어 가꾸는 ‘경작(耕作)’에서 나온 말입니다.

2006년 5월 공표된 우리나라 ‘문화헌장’에서도 ‘문화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의 기초다. 문화는 시민 개개인이 삶의 다양한 목표와 염원들을 실현해 나갈 자유로운 활동의 터전이고, 공동체를 묶어주는 공감과 정체성의 바탕이며, 사회가 추구해야 할 가치, 의미, 아름다움의 원천이다.’고 규정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제는 아쉽게도 ‘문화’라는 말만 나오면 주눅이 들고 기를 펴지 못합니다. 거제가 문화적 낙후지라는 것을 거제사람도 인정하고 있는 터이니 기가 찰 일이지요.

그럼 그 원인은 어디 있을까요? 첫 번째는 지정학적 불리함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왜구의 침략으로 노략질 당한 땅이라 문화적 순수성이나 연속된 문화가치를 영위하기 힘들었습니다.

두 번째는 정치 행정 때문입니다. 거제는 1914년 거제군과 용남면이 합하여 통영군이 되었다가, 1953년 거제군으로 복군 되기까지 39년간 거제군은 이름조차 존재하지 않았고, 거제의 모든 문화와 풍습, 인물들까지도 통영에 흡수되어 버려 거제의 정체성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복군 후에라도 문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으로 이것부터 먼저 정립해야 옳았는데 어느 정치인이나 시장도 여기에는 소홀했고 관심도 없었습니다.

시예산을 삭감할 때도 가장 먼저 칼질해서 줄이는 게 문화예산이고, 동주민센터는 번듯하게 지을 줄 알았지, 정작 문화시민의 상징이 되어야 할 문화원에 대해서는 관심에도 없는 이 기막힌 거제문화의 현주소를 아셔야합니다.

그러더니 급기야 거제시민의 문화예술공간인 야외공연장을 없애버리고 거기에 동주민센터를 짓겠다는 참으로 기막힌 발상을 하는 것을 보면 그래! 아직도 ‘섬놈-고기 배따먹고 사는 놈’ 소리를 들어도 싸다고 여길 수밖에 없습니다.

이 발상의 기저에는 시 행정이 있고, 행정에 대하여 비판하고 감시하라고 뽑아 놓은 시의회에 동조하는 의원이 있고, 결사반대를 외쳐야 할 예총 역시 제 몫을 못해주고 있는 것이 아쉽습니다.

우리 거제에도 멋진 역사가 있고, 고유의 정신문화가 있고, 삶의 깊은 통찰이 있었던 고장임을 깊이 인식하는 사유와 성찰을 가진 사람만이 거제를 이끌 자격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시민 모두를 ‘섬놈’이라는 이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우리야 ‘섬놈’소리 듣고 자랐지만, 앞으로 살아 갈 우리 아이들에게는 품위 있고 품격 있는 시민이라는 소리를 듣게 합시다.

야외공연장 하나 없애 버리는 것이 뭐 대수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 생각 속에는 문화시설이 동주민센터보다 훨씬 별 볼일 없는 시설이고, 문화예술인 쯤이야 깔아뭉개도 괜찮은 집단으로 여긴다면 이거 정말 큰일입니다.

단순하게 야외공연장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자긍심을 없애는 것이요, 문화예술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입니다. 엊그제도 보십시오 3·1절 100주년 기념식장에 문화원장이 앉을 자리조차 없었답니다. 도대체 이게 말이 됩니까?

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이 프랑스를 폭격하면서도 박물관만은 폭격대상에서 제외시킨 것이나,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 패잔병의 집결지였던 해인사를 유엔사령부로부터 폭격하라는 명령을 받고도 이를 거부한 김영환 장군의 이야기를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크건 작건 문화를 지키는 일은 똑 같습니다.

그럼에도 야외공연장 따위야 없애버리고 그 자리에 동주민센터를 짓자는 시의원이 있는가 하면, 꿋꿋하게 시민의 예술 공간을 지켜준 전기풍, 신금자, 이태열 시의원 같은 분이 있어 거제는 아직도 품위 있는 시민이 될 수 있는 희망의 끈이 보이는 겁니다.

문화를 효율성만으로 따지거나, 낭비로만 보는 편협한 인식에서 벗어나야합니다. 지체되고 뒤떨어지고 침체되고 낙후되어 있는 거제문화의 현실을 직시해야합니다.

명예와 권력, 재물 지향적 사고에서 벗어나야합니다. ‘잘 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문화를 관광과 접목하는 통영을 부러워할 일이 아닙니다. 문화를 홀대하는 거제에 산다는 것이 오히려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제 우리도 ‘문화시민’이라는 소리 좀 듣고 삽시다.

다시는 ‘섬놈’소리 듣지 않도록.



윤일광 시인 newsmorning@daum.net        윤일광 시인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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