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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힘으로 '김백일 친일 단죄비' 건립
거제지역시민사회단체, 3.1운동 100주년 기념식도 열어
  • 입력날짜 : 2019. 03.04. 14:12
거제도포로수용소 유적공원 흥남철수작전기념비 아래 김백일 동상과 나란히 그의 단죄비가 세워졌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거제시민사회가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죄상을 낱낱이 기록한 단죄비를 세웠다.

친일김백일동상철거거제범시민대책위원회(집행위원장 류금렬)는 이날 12시 거제포로수용소 유적공원에서 '김백일 친일행적단죄비 건립식, 3·1운동 100주년 기념식'을 열었다.

대책위 원종태 집행위원의 사회로 열린 이날 행사는 이종우 환경운동연합상임의장의 단죄비 건립취지문 낭독, 제막식과 비문 둘러보기, 김동성 대책위 사무국장의 경과보고, 대한독립만세 삼창, 파라미타청소년들과 함께한 독립군가 제창, 독립선언문 낭독, 기념촬영 등 100여명의 시민 학생 등이 참가한 가운데 1시간여동안 진행됐다.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지난 2018년 9월 대책위를 재결성하고 지난 2월 28일까지 거제시청 앞에서 117일 동안 동상 철거를 위한 집회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거제시와 거제해양관광개발공사 등과 협의를 통해 김백일 동상 옆에 '친일행적 단죄비'를 세우기로 하고 문화재법에 따른 '문화재 영향검토' 등 법적 절차를 완료하고 28일 단죄비를 세웠다.

대책위는 반발세력과의 마찰 등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건립과정을 비공개로 추진하는 한편 건립후 현장에서 노숙하며 단죄비를 지켰다.

단죄비는 김백일 동상과 1.5m떨어져 동상과 같은 크기로 제작됐으며, 단죄비에는 '건립취지문', 단재 신채호 선생이 남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문구, '간도특설대의 죄상',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과정', 대책위 참가단체 명단 등이 기록돼 있다.

대책위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친일반민족행위자의 동상, 기념비 등에 대한 '단죄비'는 7개 정도 설치돼 있으나, 모두 표지판 형태에다 규모도 작지만 거제에 세워진 단죄비는 동상과 같은 높이와 크기의 입체 형태로서 전국에서 유일하다.

대책위는 "3·1독립운동 100주년 전에 김백일 동상 철거를 위해 노력했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여 거제시민들의 힘을 모아 이 단죄비를 건립하였다"며 "우리는 김백일의 동상이 철거될 때까지 '단죄비'를 세움으로써 이곳을 찾는 모든 이들에게 역사의 진실을 알리고자 한다"고 말했다.

또 대책위는 "국회가 '친일반민족행위자현양행위금지법' 등을 제정하도록 하여, 전국의 모든 친일반민족행위자의 기념물이 철거되고 다시는 건립되지 못하도록 노력해 나갈 것"이라며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한 우리의 운동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참석자들은 '3.1운동 이어받아 친일세력 청산하자', '국회는 반민족행위자 현양금지특별법을 제정하라'는 등의 구호제창 후 행사를 마무리 했다.

한편 대책위는 단죄비 건립비용 마련과 친일반민족행위자현양행위금지특별법 제정 등을 위한 시민모금활동을 진행할 계획이다.

*단죄비에 기록된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김백일 친일행적 단죄비 건립취지문>

3.1독립운동 100주년, 광복 70여년이 지난 대한민국에 아직도 친일반민족행위자의 동상이 버젓이 서 있다. 김백일은 일제 괴뢰국인 만주국 간도특설대 중대장으로 일제의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하고 훈장까지 받은 자이다. 그의 동상은 지금까지도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을 제대로 단죄하지 못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3.1독립운동 100주년인 오늘, 우리는 참담한 심정으로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과 독립지사 앞에 고개를 들 수가 없다.
김백일 동상은 2011년 5월 거제시(당시 시장 권민호)가 문화재영향검토도 받지 않은 채 불법적으로 설치를 허가하여 이 자리에 지금까지 남아 거제시민들을 욕되게 하고 있다. ‘친일반민족행위자진상규명위원회’에 의해 친일행적이 낱낱이 밝혀진 김백일의 동상은 즉각 철거되어야 한다.
우리 대책위는 2011년 결성된 '거제역사바로세우기를위한 김백일동상철거범시민대책위원회'에 이어 2018년 10월 재출범하였다. 우리는 3.1독립운동 100주년 전에 김백일 동상 철거를 위해 노력했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여 거제 시민들의 힘을 모아 이 단죄비를 건립하였다. 우리는 김백일의 동상이 철거될 때까지 ‘김백일친일행적단죄비’를 세움으로써 이곳을 찾는 모든 이들에게 역사의 진실을 알리고자 한다.
또한 국회가 ‘친일반민족행위자현양행위금지법’ 등을 제정하도록 하여, 전국의 모든 친일반민족행위자의 기념물이 철거되고 다시는 건립되지 못하도록 노력해 나갈 것이다.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한 우리의 운동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3.1독립운동 100주년을 맞아
2019년 3월 1일
친일김백일동상철거 거제범시민대책위원회

<김백일의 친일행적>

김백일(1917~1951)의 본명은 김찬규이고, 일본명은 가네자와 도시미나미(金澤俊男)이다. 김백일은 1937년에 만주국(1932~1945년, 일본이 ‘만주사변’을 일으켜 중국 동북지방을 점거해 세운 국가) 중앙육군훈련처(봉천군관학교)를 졸업하고, 11월에 만주국군 소위로 임관하였다. 1938년부터 간도특설대의 창설요원으로 참여하여 간도성 일대의 항일무장부대(독립군 등) 공격에 참여했다. 1941년 3월에 중위로, 1944년 3월에 상위(대위)로 진급했다. 김백일은 간도특설대 제1련의 연장(중대장)으로 간도성 및 열하성 일대에서 소속 부대원들을 거느리고 일제의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하였다. 이로 인해 만주국 정부로부터 1943년 9월에 훈5위 경운장을 받았다.
김백일은 만주국군 간도특설대원으로서 항일무장세력 및 무고한 민중에 대한 탄압에 적극 앞장섰고, 이를 공로로 인정받아 훈·포상을 받은 자로서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조 10호와 제19호에 해당돼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되었다. 출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

연도별 <김백일의 친일행적>

김백일(金白一, 1917~1951)
본 명 ; 김찬규(金燦奎),
일본명 : 가네자와 도시미나미(金澤俊南)
1936.04 만주국 중앙육군훈련처(봉천군관학교)제5기로 입학
1937.09 만주국 중앙육군훈련처(봉천군관학교)제1구에서 훈련을 받고 졸업
1937.11 만주군 보병 소위로 임관하여 제3군구 예하 보병 제15단에 배속
1938.12 간도특설대 창설을 위해 제6관구 연길지구 사령부로 전임
1939.03 간도특설대 창설에 참여
1941.03 만주군 보병 중위로 진급
1943.09 만주국 정부로부터 훈5 경운장(景雲章) 받음
1944.03 만주군 상위(대위)로 진급 후, 간도특설대 중대장(제1련장)을 맡음
1945.03 중국 하북성 사집진 일대에서 팔로군 및 민간인을 상대로 한 ‘치안숙정’공작을 펼침
1945.08 일본의 패전 후 예하 부대원들과 함께 심양에서 해산
2009.11 <친일반민족행위자진상규명위원회>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
출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과정>

김백일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일제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2004.3.22 공포)에 따라 2005년 5월 31일 설립되어 2009년 11월 30일까지 활동한 대통령 소속 국가기구이다. 위원회는 1006명의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과 친일행적을 담은 총 25권 분량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를 발간하고 임무를 마쳤다.
위원회는 ‘친일반민족행위’를 일본제국주의의 국권침탈이 시작된 1904년 러·일전쟁 개시 때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행한 20가지 범주의 친일행위로 규정하고, 제1기(1904년 러·일전쟁~1919년 3·1운동), 제2기(1919년 31운동~1937년 중·일전쟁), 제3기(1937년 중·일전쟁~1945년 8·15광복)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을 발표했는데, 김백일은 3기 명단에 포함됐다. 김백일은 대한민국 국회가 제정한 법률에 따라 국가기구가 공식 확정한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출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

<간도특설대의 죄상>

간도특설대는 일본군관의 지휘하에 일본침략자의 삼광정책(모두 죽이고, 모두 태우고, 모두 빼앗는다는 정책)을 충실히 집행하여 적극 ‘소탕’을 조직하고 지극히 야만적이고 잔인한 수단으로 우리 항일연군과 기타 애국무장세력에 대해 피가 낭자한 진압을 하였다. ‘토벌’중 항일애국인사와 무고한 백성을 대거 살해하였으며, 또 적극 정보를 알아내 고문을 자행하고 항일조직 와해 등 활동을 하였다. 조사에 의하면 간도특설대 설립부터 해산까지 ‘토벌’활동과 사건은 모두 108차에 달하였다. 살해된 항일전사, 혁명가속 및 혁명군중은 172명에 달한다. 강간·강탈·고문·구타·방화 등 죄악은 부지기수이다.
항일세력에 대한 ‘토벌’활동은 주요하게 3가지 수단을 사용하였다. 하나는 일본수비대와 연합하여 ‘토벌’을 진행하며, 두 번째는 특설부대가 단독으로 ‘토벌’을 진행하며, 세 번째는 사복부대를 조직하여 농민으로 분장하고 농촌에 잠입하여 우리 항일연군의 행적과 민심을 정찰하는 것이었다. 출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



서진일 기자 newsmorning@daum.net        서진일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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