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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인생에는 선택 할 수 없는 것도 있습니다
  • 입력날짜 : 2012. 10.16. 15:21
어린날 아껴먹던 사탕이 흙 바닥에 떨어졌을 때 얼마나 실망했는지 모릅니다.

사탕의 달콤함을 맛 볼 수 없게 됐다는 사실에 절망했습니다. 주워서 먹을까 갈등도 했지만 “떨어진 것은 절대 먹으면 안 된다” 는 할머니 말씀을 거역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저와 같은 경험을 하신 분은 안계십니까.

사탕과 비교할 수 도 없는,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허무하게 꿈을 놓친 일은 없으십니까.
꿈 꾸는 일이 희망이라면 반대로 꿈이 한순간 무너져 내리는 경험은 절망일 것입니다.
저는 가끔 절망이라는 놈과 대면합니다. 지독하게 끈질긴 놈입니다.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거나 삶의 궁핌 함이 드러날 때, 좌절을 넘어 이놈과 맞닥뜨리게 됩니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시간이 멈춘 듯 충격이 있습니다. 연료가 떨어진 자동차가 고속도로에서 멈춰선 듯 한 그런 경험입니다. 평소답지 않게 생각까지 가난해지고 궁핍해집니다.

이럴때면 놈이 어느 틈엔가 제 곁에서 “지금 기분이 어때” 라고 귀속말을 합니다.

나는 한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부모의 몸을 빌어 이 땅에 태어나 장성한 사람입니다. 제가 이 사람의 미래를 볼 수는 없지만 이 사람은 앞으로 세상에서 열심히 빌어먹다가 아버지 집으로 떠나게 될 겁니다.

그가 부자로 떠나든 가난뱅이로 떠나든 건강하던 아니던 결국 자신의 소유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 하나도 챙기지 못하고 빈손으로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갈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누구나 이처럼 평생을 세상가운데서 빌어먹다 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이왕이면 건강하고 물질적 풍요를 누리며 대대손손 잘 살아가면 좋겠지만 세상을 살아가려면 피할 수 없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아침이 오는가 싶으면 어느 사이 밤이 찾아오고 밀물과 썰물처럼 인생에도 ‘희노애락’을 경험하게 됩니다.

육체적 고통이든 정신적 고난이든 자신이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 앞에서 경이로움에 탄성을 지르거나 반대로 심한 좌절을 맞보기도 합니다.

‘두드리라 열릴 것이요 구하라 얻을 것’ 이라는 성경말씀이 있지만 용기를 잃은 사람에게는 두르리는 것 조차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한 때 숲의 제왕이었지만 용기를 잃어버린 사자같이 말입니다.

장 터를 좋아하는 또 다른 사람이 있습니다.

장이 서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는 장돌림 상객입니다. 그는 떠돌아 다니며 타양살이를 합니다. 상객이 없는 장터는 흥이 나지 않습니다. 장터곳곳에 전을 펴고 난전이 서고 왁자지껄한 거리에서 사람 냄세 맡으며 국밥 한 그릇에 막걸리 한사발 쭉 들이킬 수 있도록 해주는 상객은 장터의 분위기 메이커입니다.

우리의 삶도 매일 매일이 인생의 장날을 맞이하는 상객이 되 듯 내일을 향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해야 합니다. 미치면 넘어서야 합니다.

문제를 만났다고 미쳐버리거나 돌아버릴 일이 아니라 골인지점에 들어서야 합니다. 다음 경기를 준비하듯 새로운 관문을 위해 전진해야 합니다.
몸이 지쳐 약하지면 면역력이 약화되고 결국 질병이 찾아옵니다.

육체적으로 고통이 따릅니다. 나는 지금부터 아프다. 지금은 나아야 한다고 해서 아파지거나 나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육신의 질병은 선택할 수 없다는 사실은 누구나 금방 알아챕니다.
질병은 스스로 치유되기도 하지만 제때 치료를 받지 않거나 오래두면 목숨을 잃기도 합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육체에 오는 질병은 쉽게 두려워하면서 영적인 죽음에는 둔감하다는 것입니다.
감기도 못 다스리면서 자신의 정신세계는 스스로 충분히 제어할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대단히 용기있는 행동이 아니라 지극히 어리석음 인 것을 깨닳아야 합니다.

끓는 물에 개구리를 집어넣으면 죽을 힘을 다해 달아나려 하지만 개구리와 함께 물을 끓이면 개구리는 달아날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죽게된다고 합니다. 전자가 육체라면 후자는 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 때 전신을 움직이지 못했던 적 이 있습니다.

오랜 투병은 육과 영을 피폐시켰습니다. 살 수 있을까 보다 빨리 하루라도 건강을 회복하고 살아봤으면 좋겠다는 생각만하고 고통속에 살았습니다.

어느날 봄 목련나무 새순위에 봄비가 내려앉았습니다.

햇살에 비친 물방울은 마치 세상의 어떤 보석보다 영롱했습니다. 그 때 결심 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이 세상에 살아계시면 나를 일어나게 해 달라고, 내가 일어나면 세상을 위해 당신이 필요로 하는 일을 하겠다고 말입니다.

그날 온 힘을 다해 누웠던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흐르는 눈물을 삼키며 두 팔을 뻗어 문을 밀치고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생의 또 다른 아침을 그렇게 맞이했습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날입니다.

육과 영의 질병을 물리치는데 가장 필요한 것은 좌절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는 용기입니다.

작은 풀 한포기도 봄의 기운을 알아채고 겨울 한 가운데서 꽃 봉우리를 키우듯이 우리인생도 좌절과 절망을 딛고 희망으로 옮겨갈 주님의 도우심과 믿음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인생길에는 평탄한 대로도 있고 비탈길도 있습니다.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좌절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특정한 사건에 대해 단정할 때입니다. 최근 “달빛을 보고 별빛을 보고도 그것이 태양의 빛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저건 달빛이야 단정하고 만다” 는 한 목사님의 설교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밤이 오면 아침이 올 때가지 태양은 없어 라고 하는 고정관념을 비유한 것입니다.
뭇별들 가운데에는 스스로 빛을 발하는 별도 있지만 대부분 태양 빛을 반사하고 있습니다.
신기하지 않습니까.

희망은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낙심하고 있을 때, 우리가 밤 하늘의 별을 보고 길을 찾아내듯이 우리의 삶도 누군가의 인생에 길잡이, 즉 등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여러분은 인생의 희망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가끔 예수님을 믿는데 시련은 왜 옵니까. 왜 나는 건강이 나쁩니까 라는 질문을 받게됩니다.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은 그 시련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토기장이가, 대장장이가 세상에 꼭 필요한 도구로 만들기 위해서는 연단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흙을 뭉쳐 아무리 좋은 그룻을 만들어도 금방 부서지고 맙니다. 쇠덩이를 녹이지 않고서는 대장장이가 어떤 모양도 만들어 내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또 다르게는 당신은 부자도 아니고 많이 배우지도 않았고 권력도 없고 건강하지도 않은데 왜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어 그것도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하며 구원하셨을까요. 왜 우리에게 세상과 다른 기준으로 불공평한 구원을 허락하셨을까요. 여러분에게는 구세주 되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하나로 누구든지 천국백성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라고 말입니다.

<서용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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