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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석 문화칼럼] 항룡유회(亢龍有悔)의 계절
  • 입력날짜 : 2012. 07.19. 13:51
예술경영 강의 때에는 STP 전략 등 과학적 마케팅을 강론하지만, 아름다운 자연 속을 유람하는 여행자는 역사, 신화, 전설, 풍수, 지리와 함께 ‘사람읽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전라도 순창으로 떠나며 배낭에는 하서시선(河西詩選) 한 권을 넣고 설레임으로 관광안내 책자를 탐닉했다.

버스 안에서 스쳐 지나가는 차창 풍경을 음미하며 순창과 관련된 인물을 떠올렸다. 송강 정철의 스승이며, 해동18현(海東十八賢)의 한 사람인 시인, 성리학자 하서 김인후. 녹두장군 전봉준이 동학혁명군 동지의 변절로 체포된 곳.

그리고 독립운동가이자 이승만 독재정권에 맞서 사법부를 지킨 청렴, 기개로 상징되는 가인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과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민주통합당 정동영 상임고문의 고향.

그중, 권력욕 암투로 선비들을 도륙한 '사림의 화'를 개탄, 관직을 사임하고 처가가 있는 순창에 은거한 김인후의 낙덕정과 훈몽재, 산세가 용이 꼬리를 치며 승천할 형상에 자리한 강천산의 용천사(龍泉寺. 현재 강천사)와 아홉 장군이 결사항전을 다짐했다는 전설의 구장군폭포 등이 기대되었다.
낙덕정(樂德亭): “도학과 절의, 문장을 모두 갖추고 있는 사람은 오직 하서 한 사람뿐”이라고 정조가 칭송하였던 김인후가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관직을 그만두고 세상을 피해 숨어 살 때 제자들과 음풍영월(吟風詠月)한 곳이다. 훗날 이곳에서 훌륭한 인재가 나올 것이라는 김노수의 예언을 따라 ‘메기 바위’라 불리던 낙덕암 위에 정자 ‘낙덕정’을 지었다.

한고조를 도와 초패왕을 꺾고 중국 천하를 통일한 장자방. ‘유방이 까마귀 상이라 고(苦)는 같이 해도 낙(樂)은 같이 할 관상이 아니다’며 화(禍)를 피해 낙향하다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 살았다는 장가계 고사처럼 고향 전남 장성으로 가다 전북 순창에 머문 하서 선생의 흔적을 더듬은 여정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천지간에 불우한 시옹(詩翁)이 있어 얼음 길을 교만스레 홀로 걷누나...”
마음이 겨울이었던 김인후의 설후행(雪後行)을 읊으며 낙덕암(樂德岩)과 훈몽재(訓蒙齋)를 둘러보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 실의, 분노, 좌절을 시주(詩酒)로 다스리던 조선 선비를 생각했다. 부패와 탐욕의 껍데기들이 권력을 잡겠다고 설치는 조정을 생각하면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하서 선생.

여행도 아는 만큼 보인다지만, 위대한 현인들과 명문가에서 배운 3가지는 ‘적선, 덕행, 교육’이었다. 은둔사상이 참여를 거부하는 완전한 현실도피를 의미하는 데 반해 도가적 은일 사상은 초탈과 덕행고사(德行高士)의 초세(超世)를 뜻한다. 김인후도 자신의 못다 이룬 꿈을 위해 훈몽재를 세워 후세 교육에 힘썼다.
훈몽재(訓蒙齋): 하서 김인후 선생이 명종 3년(1548년)에 순창 점암촌 백방산 자락에 지은 강학당이다. 그 곳에 초당(草堂)을 세우고 ‘훈몽재’라는 편액을 붙인 뒤 후학 양성과 학문에 전념하였다. 훈몽재 앞을 흐르는 추령천에는 송강 정철의 친필이 음각(陰刻)되어 있는 대학암(大學岩)이 있는데, 김인후와 정철이 '대학'을 논한 곳이다.

도학자로서 온유돈후(溫柔敦厚)한 시풍을 바탕으로 절제와 흥취(興趣), 조화미를 갖춘 시들로 당시의 사회적 모순을 은유로서 표현했던 하서의 시와 함께한 순창 여행. 조선시대처럼 사납게 병이 든 시절, 혼돈의 대한민국 시대읽기에도 유익했다.

12월 대통령 선거를 생각하며 ‘군자는 잘 물러나 길하지만, 소인은 거부한다(好遯君子吉小人否)’는 주역 괘. “국가병통(國家病痛)이 모두 사사로이 이익을 추구하는 이원(利源)에 있다.”라며 개혁을 실천한 조광조와 ‘태생적 한계’를 지닌 주군에게 배신당한 선비의 마지막 절명시도 떠올렸던 것 같다.
 
강천산(剛泉山): '호남의 소금강'이라 불리는 강천산은 백두대간 호남정맥에 속하는 산으로 높이는 584m 밖에 안되지만 산세와 계곡, 암릉이 아름다운 산이다. 강천산에는 풍수지리설과 음양도참설의 대가 도선국사가 창건한 강천사와 두 개의 용소(龍沼)가 있다. 황토맨발산책로를 체험하고 구장군폭포에서 물을 보며 마음을 씻었다(觀水洗心).

 박근혜, 안철수, 문재인, 손학규, 김두관, 김문수, 김태호 등 용생구자설(龍生九子說) 중 승천할 착한 백성의 반려는 누구일까? 공동체 복원 시대정신과 사람향기 나는 시심(詩心), 즉 ‘진짜 불인지심(不忍之心)’은 누가 가졌을까? 천(天)의 기운과 지(地)의 발복에 인(人)의 마음을 얻어야 진정한 삼합(三合)이 완성되기에!

‘호남의 금강산’이라는 강천산 숲길을 맨발로 걷다 구장군폭포 아래서 관수세심(觀水洗心)하며 자문했다. 왕이 되어달라는 요임금의 제안에 현인 허유는 더러운 말을 들었다고 강물로 귀를 씻었다는데, 힘들고 더러운 병통(病痛) 치료에 정치인들은 왜 부나비처럼 달려들까? 태양이 떠있는데도 횃불 속으로? 왜? 

 해설
* 항룡유회(亢龍有悔): 용생구자설에 의하면 용의 자식 아홉 중, 한 마리만 용이 되어 승천한다. 그것을 항룡(亢龍)이라 부른다. 항룡유회는 하늘 끝까지 올라간 용이 내려갈 생각을 하며 과거를 되돌아보며 회한에 잠긴다는 뜻.
* STP 전략: 시장 세분화(segmentation), 표적시장 선정(targeting), 포지셔닝(positioning)의 마케팅 전략
 
<김형석/컬처 크리에이터(Culture Creator), 前 거제문화예술회관 관장>


모닝뉴스 기자 webmaster@morningnews.or.kr        모닝뉴스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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