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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석 칼럼] 사랑의 힘, 추억의 힘
  • 입력날짜 : 2012. 02.23. 14:31
추억의 힘으로 탐욕의 시대를 힘겹게 거슬러 오르던 불혹을 넘긴 사내.

‘2012 전북 방문의 해’를 맞은 전라북도의 초청으로 역사 속으로의 여행을 했다.

익산 미륵사지, 김제 벽골제, 고창 고인돌 유적지, 전주 한옥마을, 진안 마이산, 장수 향교와 논개 사당 등을 문화답사 했다.

전북의 역사유적, 문화관광지와 맛집의 다양함에 매혹되었지만 한 달이 지난 지금도 뇌리에 맴도는 이야기가 있다.

한국판 ‘아이다’, 미륵사의 초월적 사랑? 종말적 사랑?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향가. 1,400여 년 전, 사랑의 노래 ‘서동요’ 전설이 있는 익산 미륵사는 ‘작전명 서동요(?)’로 미녀를 얻고 싶은 미혼 청춘들의 로망, 비기(秘技)의 고향이다. 백제 무왕이 된 서동과 황후가 된 신라 선화공주가 함께 걸었을 미륵사지를 소요유하다 들은 문화해설사의 설명에 직업의식은 창조적 상상의 나래를 폈었다.

미륵사는 무왕이 미륵삼존불이 출현한 연못을 메워 조성했다는데, 최근 미륵사 앞 연못에서 껴안고 죽은 수백년 된 젊은 남녀의 유골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베르디 불멸의 작품, 오페라 ‘아이다(AIDA)’도 이집트 고대 사원의 제단 밑에 남녀의 해골이 발굴된 일이 있는데 그것을 소재로 하여 줄거리를 창안했었다.
익산 미륵사지 풍경사진과 연못에서 백골 발견 이야기를 듣고 떠올린 이미지인 화가 백진스키 작품 '무제'. 그리고 오페라 '아이다' 공연 포스터

비극적 운명에 저항하다 신분의 벽을 넘지 못한 남녀가 서동요의 설화가 있는 미륵사에서의 죽음은 종말적 사랑일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미륵세상에서의 영원을 꿈꾼 사내와 계집의 초월적 사랑이었을까?

"조선의 백골? 백제의 사랑? 사랑과 조국?" 시공을 넘나들며 윤회하던 미륵사지의 행복한 상상력 여행 중, 거제도에서 문화재단에 근무할 때 유명 소설가에게서 ‘지역 문화마케팅을 위한 스토리텔링’ 조언으로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꿈의 창조산업시대, 지속가능한 명품도시 만들기

일본강점기 강원도 깡촌. 험한 산 고개를 넘기 위해 목탄차(木炭車) 화물칸에 노인, 청년, 아저씨, 아주머니, 소년 등 10여 명의 동네 사람들이 탔다. 산 중턱을 힘겹게 오르던 목탄차가 호랑이를 만난다.

두려움에 떨며 화물칸에 탄 승객들은 운전사에게 돌진해 도망가자고 한다. 그러나 황소만한 거대한 호랑이가 구불구불한 산길을 버티고 있는 상황이라 운전사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호랑이가 길을 비켜줄 때까지 기다리기로 한다. 몇 시간이 지나도록 호랑이는 목탄차를 노려보며 포효한다. 그때, 세상을 많이 산 노인이 말했다.

"호랑이는 영물이니 우리 일행 중 목숨이 다한 사람이 있다. 각자 윗도리를 벗어 호랑이에게 던져보자."

사람들은 각자 상의를 벗어 던져, 호랑이가 고른 옷의 임자를 호랑이 밥으로 결정한다. 그런데 던져진 옷더미에서 호랑이는 가장 나이 어린 소년의 옷을 물어 든다. 어른들은 울며불며 애원하는 소년을 매정하게 호랑이 앞에 내려놓은 뒤 황급히 차를 몰아 떠난다.

그러나 호랑이는 혼자 남아 무서워하는 소년을 해치지 않고 깊은 산속으로 돌아간다. 소년은 '걸음아 날 살려라'라며 마을 쪽으로 뛰어 내려오는데 계곡 모퉁이에서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급히 도망치던 목탄차는 얼마 못 가서 계곡 아래로 떨어져 탑승객 전원이 사망한 것이다.

목탄차 등이 시대상황을 진실처럼 그려주지만, 이 스토리는 허구이다. 숨어 있는 ‘감동을 위한 키워드’는 사람들을 몰입하게 한다.

기막힌 반전(反轉), 동양적 운명론, 독창적 상상력 등 스토리텔링의 '기본 공식'을 활용한 전문가들이 지역 마케팅에 뛰어들어 익산에서도 한국판 ‘아이다’가 제작되기를 소망해 본다.

"사과를 팔려면, 사과를 사라고 하지 말고 사랑을 팔아라."고 했다.

꿈의 창조산업시대, 문화 콘덴츠에도 짝퉁과 명품은 존재한다. 도토리 키재기가 아닌 ‘지속가능한 명품도시 만들기’에 대한민국 지자체들의 발상 전환, 선택과 집중이 절실한 시점이다.

<김형석/컬처 크리에이터(Culture Creator), 前 거제문화예술회관 관장>


모닝뉴스 기자 webmaster@morningnews.or.kr        모닝뉴스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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