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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인의 세상읽기] 방송이 앵무새도 아니고
사실(fact)은 보여주되 진실(truth)은 보여주지 않는다
  • 입력날짜 : 2012. 01.11. 14:29
지금은 조금 잦아들었지만 대한민국 국민들은 연말연시를 김정일 사망과 김정은의 동태를 반복해서 들려주는 방송들의 소음속에 보내야만 했다.

특별히 새로운 소식도 없는데 대부분의 공중파 방송과 케이블 채널의 뉴스 전문채널에서는 약 보름에 걸쳐 해당 내용을 반복해서 들려주는 만행을 저질렀다.

김정일의 사망이 중요한 뉴스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보름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생중계 하듯이 방송해야할 내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번 김정일 사망 뉴스 외에도 대한민국의 방송은 특별한 이벤트가 발생하면 여러 날을 반복해서 방송하는 관행이 있다.

지난번 일본 원자력 발전소 피해 사건이 생겼을 때도 방송들은 온 국민을 원자력 전문가로 만들 작심을 한 듯이 여러 날에 걸쳐 대동소이한 내용을 방송하였다.

대한민국 방송들은 왜 이런 행태를 보이는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필자는 방송들이 방송전파를 이용해 현실에 영향을 미치고 싶어하는 것이 아닐까 의심해 본다.

현재 사람들이 알고 있는 세상은 방송을 포함한 언론이라는 미디어를 통해 습득하게 된 지식으로 구성된 세상이다.

한번도 대한민국 영토를 벗어나보지 못한 사람일지라도 방송을 통해 세계 각지의 아름다운 풍경 및 풍습에 대해 몇 시간을 떠들 수 있는 지식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사람이 알고 있는 세상은 실존적 세상일까 허상적 세상일까? 즉,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보는 세상은 가상도 아니고, 실제도 아닌 관념적인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사람들은 어떤 사건의 사회적, 정치적 중요성을 ‘그것이 텔레비전에 나왔느냐, 안 나왔느냐’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방송들은 특정 사건을 반복해서 보여줌으로써 해당 사건이 매우 중요하고, 기타 많은 사건들의 중요성을 의도적으로 축소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지금도 현재 진행형인 부산저축은행 사건의 경우 방송에서 자취를 감춤으로해서 당사자를 제외한 국민들은 저축은행 사태가 어느 정도 마무리된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된다.

방송을 통해 현실을 왜곡하고자 했던 첫 번째 사례가 히틀러의 방송정책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히틀러가 유대인의 나쁜점들을 방송을 통해 반복적으로 독일 국민들에게 들려주어 유대인 대학살에 대해 별다른 거부감을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 방송을 통한 국민 세뇌작품의 성공작이며, 인류 문명사의 최대 오점이 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방송을 통한 현실 왜곡 방법도 점점 진화하고 있다. 히틀러의 경우에서 본 것과 같이 사실(fact) 자체를 왜곡해서 방송하는 일차원적인 방법이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다. 좀 더 진화된 방법은 사실(fact)은 보여주면서 진실(truth)을 보여주지 않는 방법이다.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사람을 붙잡고 인터뷰를 하다보면, 비록 식당의 음식이 형편없다 하더라도, 여러명 중에 한명정도는 식당 음식이 훌륭하다고 응답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이 경우 해당 인터뷰만 방송되면서 리포터가 한두마디 첨가한다면 방송을 본 시청자는 그 식당의 음식에 대한 왜곡된 환상을 가질수 있다. 하지만 방송은 사실을 왜곡한 적이 없다. 다만 진실을 왜곡 했을뿐이다.

이러한 과정이 번거롭다면, 좀 더 진화된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특정 사건을 방송하지 않는 방법이다. 1980년대 광주 항쟁의 경우가 그러하다.

사실 왜곡이라는 기본적인 방법도 같이 동원되긴 했지만, ‘국풍 80’이라는 국가적 이벤트를 만들어 모든 방송이 이를 집중적으로 보도하게 하면서 광주항쟁에 대한 방송을 하지 않는 방법을 통해 한 시대의 가장 큰 아픔인 사건이 단순한 시위사태 정도로 만들어 버린 경우다.

방송이 세상을 실존 그대로 보여줄 수는 없겠지만,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세상을 왜곡되게 보여주고자 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필자는 특정 사건이 방송 및 신문을 완전 점령하는 시기에는 항상 해당 사건 직전에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확인해 보는 노력을 한다.

그러다 보면 방송 또는 권력이 어떤 일을 숨기고 싶어하는지 어렴풋이 알수 있게 된다. 또한 필자는 특정 사건이 방송 및 신문을 완전 점령하는 시기에 단신으로 처리되는 뉴스가 무엇인지 확인해 보는 노력을 한다.

그러다 보면 권력이 어떤 일을 기습적으로 해결하고 싶어하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다. 어쨋던 저쨋던 또다시 방송이 앵무새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동인
해성고등학교 졸업/KAIST 공학박사/(전) 삼성전자 재직/(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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