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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석 칼럼] 시대정신 읽기 위한 여행
김형석/컬처 크리에이터(Culture Creator), 前 거제문화예술회관 관장
  • 입력날짜 : 2011. 11.22. 11:49
김형석
시대정신에 맞는 건강한 문화생태계의 복원과 창조를 고민하는 사내의 멘토는 '여행, 책, 예술가'이다.

양극화, 이데올로기, 소통, 글로벌 경제위기, 신자유주의, 한미 FTA 등 문제적 단어들이 칼춤을 추는 우울의 시대. 답답한 마음에 "차라리, 쌍학흉배(雙鶴胸背) 시인이 다스리는 시대로 다시 돌아가자."를 말벗들과의 술자리에서 어쭙잖게 외치다, 침묵하기 힘든 시끄러운 도시를 떠나 가을여행을 했다.

출발 전, 책방에 들려 책을 3권 샀다.

앙가주망(참여)에 대한 관심으로 사르트르의 '시대의 초상', 19세기 말 비엔나 천재 예술가들의 독창적 성취를 만나기 위한 책, 그리고 목민심서. 관심 있는 문화마케팅 공부하기에도 시간이 벅찬데 "왜 이런 책을 읽어야 할까?" 자문하며 떠난 여행에서 의외성을 만났다.
경북 군위 김수환 추기경 생가 옆 감나무의 '까치밥'. 우리 민족은 어려운 살림살이에도 자연과 이웃과 공존하며 나눔을 실천했다.감을 다 따지않고 남겨두는 온정은 날짐승에게도 배려하는 순박한 마음씨. 넉넉하지 않던 시절의 전통이 면면이 내려와 나눔과 인정을 배풀었는데? 각박한 현대사회의 대한민국, 지금은?

현실을 외면하지 않은 실천적 지식인 이승휴 선생이 제왕운기를 집필한 삼척 천은사, 정사보다 창조적 상상력이 넘치는 야사를 좋아해 민족 고전 '삼국유사'의 산실이자 겨레 정신사의 성지인 군위 인각사 등 문화유산 답사가 여행의 이유였다.

그러나 목적을 두었던 '민족 역사의식 찾기'보다는 자연에서 배운 감동이 훨씬 컸다.

여행에서 사고는 진화한다, 자연과의 교감과 추억의 힘으로. 여행의 목적지보다, 스쳐 지나다 우연히 들린 전통 마을의 은행나무 낙엽 위 마실길, 참나무 불가마 속에서의 사유가 더 큰 깨달음을 주었다.

돌담이 정겨운 시골마을의 지천으로 깔린 노란 말(言)들을 밟으며 소요유했던 산책길에선,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는 시인의 육성을 떠올렸다. '버림과 비움'으로서 혹독한 추위를 극복, 새봄을 기다리며 천 년을 사는 은행나무의 가르침을 읽었다.


건강을 위해 땀을 흘리는 관광객들과 함께 한 화기(火氣)가 가시지 않은 참숯가마 토굴 속에선, 학창시절 전통가마로 도자기 만들기 체험에서의 '심미적 충격'을 떠올렸다.

1980년대, 그 불신한 시대의 미소와 인사를 그리던 화가 지망생은 삶과 존재의 답을 얻었었다. 장인정신으로 무장한 도예가와 나누었던 대화도 유익했었지만, 작은 불구멍을 통해 가마 안을 들여다보았을 때 '순백색으로 형상만 남은 토기들 이미지'는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도자기를 만들 때 초벌은 850도, 재벌 1250도 정도의 온도로 굽는다. 도자기를 완성하기 위해 유약으로 여러가지 그림이나 색상을 칠한 토기들은 지저분하다.

그런데 미운 오리새끼가 백조로의 변신, 평범한 흙이 명품 도자기로의 혁신을 위해서는 1000도가 넘는 가마 속에서 뜨거운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 경이와 절정의 순간만큼은 각양각색 중 형태만 남고 색깔은 사라진 순백의 단색이 된다. 그 윗목, 아랫목이 없는 공평하고 조화로운 가마 속 세상. 고열의 '불같은 사랑'에서는 빨간색도, 파란색도, 노란색도 사라지고 하나의 색. 무색(無色)이 된다.

문화예술의 방향성을 항상 '생명(life)과 인간애(humanity)'에서 찾으려는 여행자는 생각했다. 남북, 동서, 빈부, 여야, 진보와 보수도 없이 형태만 남고 색깔이 없는 한통속인 불가마 속 같은 다양성으로 조화로운 공동체를 위해서는 문사철, 인문학, 예술의 숲에서 '죽기, 아니면 사랑하기'로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분노하고 싸워야 한다.

경제적 위상에 걸맞은 대한민국. 문화예술을 알고, 사람에 대한 예의와 헌신을 아는 인격과 품격있는 국민과 지도자의 나라가 되는 자존의 길. 민족사 앞에 진정성만 있다면 치열한 갑론을박, 가열찬 백가쟁명에서 시대의 빛과 희망이 열린다.

사랑하는 우리나라, 더 아프게 투쟁하라. 상생을 위해 숯이 될 정도로 자신을 태워 완성하고, 낙엽처럼 내 살(肉)을 버려 천년거목으로 생존시켜라.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통합을 위한 위정자라면 굴욕적 의혹과 편파적 시선들에 욕을 똥바가지로 퍼먹더라도 강건하게 대의를 위한 길을 가야 한다.

역사에서 증오의 세기에 가장 진보적 발전이 있었다. 애국애족의 길이라면 서로 불길처럼 타올라 더 탐욕스럽게 독설하고 더 잔혹하게 경쟁해 국민의 마음을 점령, 큰꿈을 펼쳐라.

지도자는 전복적 성찰로, 반전이 있는 감동으로 승부하라. 정치에서도 창조적 혁신과 파괴의 '명품 도자기 같은 리더십'을 만나고 싶다.

서울 가면 수시로 찾아뵙는 '삼국유사 읽는 호텔'을 쓴 윤후명 소설가의 말씀이 귓전을 맴돈다. "강성했던 로마제국의 힘은 칼이 아니라 수사학이었다." 말이 넘치는 세상. 다음 겨울여행길에는 로마의 수사학 관련 책과 영웅호걸, 왕후장상이 아니라 험한 세상을 성실하게 살다간 범부들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책 하나 사서 떠나야겠다.


모닝뉴스 기자 webmaster@morningnews.or.kr        모닝뉴스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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