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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안정(安定)과 역동(逆動)
  • 입력날짜 : 2011. 11.17. 10:53
한동인 해성고등학교 졸업/KAIST 공학박사/(전) 삼성전자 재직/(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재직
한해 달력을 되돌아보면 연례행사처럼 꼭 하는 일들이 있다.

크게 보면 두 번의 명절이 있고, 작게 보면 연말정산, 여름휴가, 배우자 생일 등 직장인이 한해도 소홀히 지나쳐서는 안되는 일들도 있다.

매년 개개인과 직결되지는 않지만 어떤 면에서 보면 온 나라가 명절보다도 더 심각한 홍역처럼 치루는 행사가 얼마 전에 지나갔다.

‘대학입학시험’

하늘을 나는 비행기도 잠시 멈추게 하고, 온 나라 직장인의 출근시간도 조정하게 만드는, 해외토픽에 나올만한 연례행사가 대학입시가 아닐까?

연례행사처럼 몇 명의 학생이 자살했다는 뉴스가 나오고 이를 이제는 무덤덤하게 바라보고…. 이제 한두달이 지나면 연례행사의 승자가 나올 것이고, 패자는 다시 내년의 시험을 준비하거나 새로운 인생항로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얼마 전에 IT업계의 메시아(?) 스티브 잡스가 타계하였다. 국내 언론의 반응은 다양했으나, 크게 두 가지로 압축해볼 수 있겠다.

한국 IT 업계가 이번 일을 계기로 어떤 이익을 볼 수 있을까를 전망하는 경망스러운 반응과 대한민국에는 스티브 잡스와 같은 인물이 나오지 않을까를 분석하는 반응이다.

IT업계의 손익분기점 계산과 관련해서는 더 언급할 내용이 없지만, 두 번째 반응은 기성세대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가 아닐까 한다.

대학입시 시험이 끝나면 많은 입시정보업체들이 예상 합격선을 발표한다. 합격점수는 시험의 난이도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대학 및 전공별로 합격선을 분류해서 합격선이 높은 순서대로 나열하면 몇년전 순서나 이번해의 순서가 크게 다르지 않다.

필자가 공학도이므로 이과 쪽 합격선 순서를 유심히 보면 서울 명문대의대, 서울에 있는 의대, 지방 국립대의대, 서울 명문대약대의 합격선 다음으로 서울대 이공계열의 합격선을 찾아볼 수 있다.

대한민국 고등학생의 조상이 모두 허준이 아님에도 이렇게 모든 학생들의 꿈이 의대를 지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선호하는 직업군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더욱 처참하다. 의사, 약사, 변호사, 변리사 등의 전문직이 최상위권을 형성하고 다음은 공무원, 교사 등이 다음 순번을 차지하고 있다.

이 모든 현상을 분석해 보면 안정지향적인 대한민국 사회의 현 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직업을 선택함에 있어 인생에 대한 고민, 직업이 줄 수 있는 만족감 등 당연히 거쳐야 할 고민은 전혀 없이, ‘얼마나 벌수 있을까?’ ‘얼마나 안정적인 직업인가?’ 만을 고민하는 청소년들을 보면서 대한민국의 장래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현상을 청소년들의 잘못이라 할 수는 없다. IMF 사태와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형편없는 사회안전망을 목도하게된 청소년들의 생존본능이 이러한 결과를 나타냈다고 할 수 있다.

꿈과 자아실현 욕구를 해소하기위해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다가 실패한 기성세대가 얼마나 심각한 빈곤의 나락으로 빠져드는지 알게 되었고, 국가는 이들을 위해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사람은 생존을 위한 선택을 할 수 밖에 없게 된다.

마이크로 소프트, 애플, 구글 등을 보면서 우리나라에는 왜 저런 회사가 생기지 않는지 한탄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위험을 감수하고자 하는 젊은 세대들의 역동적인 도전이 없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모두 한국인이라면 꿈에도 그리는 미국의 명문대학을 중퇴하고 사업을 시작했다.

우리는 성공한 몇 명의 CEO를 보지만, 미국 사회의 저변에는 마이크로 소프트, 애플, 구글을 꿈꾸며 도전을 시도하는 많은 젊은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도전들 중에 극소수만이 마이크로 소프트, 애플, 구글같은 성공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렇다면 나머지 도전자들은 빈곤의 나락에서 빠져 인생을 고통스럽게 살면서 보낼까? 그렇지 않기에 지금도 미국 사회는 도전을 당연시하는 젊은이들이 역동적인 사회를 만들어 가고 있다.

요즘 안철수 열풍이 정치권을 휩쓸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 이전에 젊은이들이 안철수에 열광하는 시기가 있었다.

의사, 사업가, 교수 등의 변신을 거듭하면서 하는 일마다 성공을 거두는 그를 보며 젊은이들은 열광하였다. 하지만, 누구나 안철수처럼 변신을 거듭할 수 있을까?

그가 이룬 성과는 대단하고 필자 개인적으로도 그를 존경하지만, 누구나 그와 같은 도전을 할 수는 없다. 안철수는 국가가 제공해주지 않는 사회안전망을 개인적으로 구축하여 도전이 실패했을 때도 생존을 걱정해야할 필요는 없었다.

사회안전망을 다른 말로 하면 보편적 복지다. 인생을 스스로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기본적인 인간적 삶은 보장될 수 있다는 믿음이 사회 구성원에게 있다면, 지금과 같은 극단적인 안정지향적 사고를 청소년들이 가지지 않을 것이다.

복지는 공짜도 아니고, 낭비도 아니다.

복지는 미래를 위한 투자의 역할도 훌륭히 수행할 수 있다. 매년 반복되는 대학입시를 보면서 입시의 과열이 걱정되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들의 지독한 안정지향적 사고가 너무나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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