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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오페라 이순신 제작자 백기현 교수의 기적
28일~29일 오전 거제고현교회에서 신앙간증
  • 입력날짜 : 2010. 11.28. 19:55
1998년 첫 무대에 오른 뒤 2000년 이탈리아 로마, 러시아 상뜨뻬떼르부르크 등 수많은 곡내외 공연을 가진 한국 오페라의 세계화에 기여한 ‘오페라 이순신’ 의 제작자 백기현교수가 신앙간증자로 변신했다.

‘오페라 이순신’ 은 한국을 대표해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등 국위선양과 민간외교에 큰 역할을 해온 이충무공 순국 400주년 기념사업으로 창작된 작품이다.

‘오페라 이순신’은 니콜로 이우콜라노(이탈리아)에서 주세페 마주카, 니콜라 사말레, 아가포니코프 블라디슬라프(러시아) 등 세계적인 작곡가들이 수정과 개작에 참여할 정도로 한국의 대표적 오페라로 자리매김했었다.

백기현 교수는 ‘오페라 이순신’을 창작해 국내외 공연을 펼쳐 온 충남 공주 성곡오페라단의 단장이다.

백 교수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그는 ‘오페라 이순신’의 제작자이기보다 자신이 하나님을 만난 일을 전하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28일 거제 고현교회를 찾은 백교수는 전국을 다니며 55년 곱사등이가 치유된 사건을 전하러 다닌다. 2살 되던해에 높은 곳에서 떨어진 후 척주결핵으로 뼈가 곪아 곱사등이가 된 그가 하나님을 만나고 치유받은 사연을 알리고 싶어서이다.

서울대 음대와 대학원을 졸업, 27살에 대학교수가 되고 대학교수와 결혼한 뒤 ‘오페라 이순신’ 의 제작자가 되기까지. 백 교수는 자신의 이야기를 가감없이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백교수는 그동안 가슴속에 자리잡았던 자신의 콤플렉스에 관한 이야기도 했다.

“나의 작은 신장과 굽은 등으로 무대에서 쫓겨난 적도 허다했다. 내가 제일 싫어했던 것은 나의 굽은 등 뒤로 보는 시선이었다. 성악 성자도 모르는 나에게 음악선생님을 만나게 하고 교회로 인도되어 신앙생활을 하게 됐다. 서울대를 거쳐 빈 오스트리아로 유학하게 됐고 젊은 나이에 대학교수로 그것도 부부교수로 부러울 것 없는 인생을 살게됐다.”

“하지만 굽은 등에 대한 열등감은 감출 수 없었다. 스스로 무대위에 서는 대신 오페라 제작자로 해외공연을 업적처럼 여기며 하나님 대신 오페라를 우상처럼 섬기며 혈기를 부렸다” 고 고백했다.

자신만만 했던 그가 어떻게 하나님을 다시 만났을까. 한때 오페라단이 심각한 재정난에 빠지는 일이 일어났고 가정에도 위기가 닥쳤을 무렵인 2005년, 그는 썩 내키지 않았지만 주위의 권유로 접하게 된 한 부흥회에 참석한 일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됐다.

2005년 2월 4일, 구정, 햇살이 가득한 어느 날 아침, 아내와 함께 방에 있었지만 빚 문제로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에 불편한 심정이 눈앞을 가로막고 있을 때 아내의 동료교수 한 사람이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왔다...<중략>
나는 나의 의지에 관계없이 팔, 다리, 고개, 어깨, 허리, 등이 꺾이기 시작했으며 50여 년 동안 시리고, 저리고, 불쾌하였던 등줄기가... <중략>
하나님은 계속하여 “너의 죄가 무엇인지 아느냐”를 물으셨고, “잘 모르겠습니다. 로 답하는 나에게 “너는 왜 나를 너의 아버지라고 네가 네 입으로 외치지 않았느냐”라고 하시면서 나를 꾸짖으셨다...<중략>
새벽 6시, 눈물 콧물로, 땀으로 범벅이 된 옷을 벗고 거울 앞에 서서 보니 굽었던 나의 등이 모두 펴진 것을 확인했다. 아내도 나의 굽은 등이 없어진 것을 보고 절규에 가까운 “하나님이 함께 하셨어요”를 외쳤다...<중략>

백기현 교수는 전국 교회를 다니며 히브리서 4장 “하나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영과 혼과 골수와 뼈를 쪼개신다.” 는 성구를 통해 성도들과 교제하며 불신자들에게 기독교 복음을 전하고 있다.


모닝뉴스 기자 webmaster@morningnews.or.kr        모닝뉴스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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