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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기행]동방의 신비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칼럼니스트 윤혜영 geo0511@hanmail.net
  • 입력날짜 : 2010. 11.09. 14:50
▲앙코르왓의 '유해교반' 부조
'지구가 만들어지고 사람이 생겨나기 이전의 무한한 옛날, 우주에는 천사와 악마가 더불어 살고 있었다. 천성이 다른 종족들이 더불어 살고 있으니 편할 날이 없었고, 무자비한 약탈과 살인, 방화가 잇따랐다.

못살겠다는 아우성이 극에 달하자 신들의 우두머리인 브라만이 절대 내공의 힘을 얻는 신비의 묘약 ‘암리타’의 존재를 말해주었다. 그리고 그것을 얻는 자가 우주의 주인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만드는 방법은 선과 악을 가진 180명의 신이 모여서 우유로 만들어진 거대한 바다에 천 년에 한번 피어나는 약초를 넣고 우주의 중심인 만다라 산을 회전축으로 하여 천 년 동안 저어야 한다고 하였다. 어떻게 비단 자락으로 바위를 닦아 닳게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시간만이 해답이다.

악마와 천사는 일치단결하여 천 년 후를 기약하며 힘을 합쳤다. 긴 노동의 세월이 흘렀고 천 년이 도래하던 날, 우유 바다는 용암처럼 끓어올랐다. 중심이 서서히 응축되며 폭발하듯 수십 번을 용트림하더니 환한 빛과 함께 무한대의 힘을 가진 암리타가 솟아올랐다.

이 기회를 놓칠세라 천사들은 준비하고 있던 무기로 악마들을 순식간에 쳐부수어 암리타를 나눠 마셨다. 그리고는 기세를 보태어 지옥으로 추방하였다. 악마들은 땅 밑으로 쫓겨났고 다시는 밝은 빛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

여기까지는 나름대로 쉽게 풀어쓴 ‘라마야나’ 이야기이다. 캄보디아 최대 성지이면서 세계 7대 불가사의인 앙코르와트의 신전에는 ‘유해교반’이라 일컫는 '우유 바다 휘젓기’가 곳곳에 섬세하게 부조되어 있었다. 그 외에도 앙코르 왕조의 모든 유적 군에서 ‘라마야나’, ‘마하바라타’와 같은 인도설화, 힌두교의 신화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반테이 스레이 사원의 부조

캄보디아를 떠올리면 킬링필드의 비극과 가난이 병치 되고 크메르 제국의 찬란함을 간직한 앙코르와트 유적이 떠오른다. 그곳은 신과 인간이 공존하는 세계인 듯 아름다운 신전이 유난히 많다. 유적들은 오랜 세월 전쟁의 야욕과 세월의 망각에 방치되며 폐허로 떠돌았다. 아름다운 폐허를 만나기 위해 캄보디아로 떠났다.

국명은 Kingdom of Cambodia. 인도차이나 반도의 중심에 있는 캄보디아는 라오스, 타일랜드, 베트남과 국경을 공유하고 있으며 국토의 75% 이상이 울창하고 광활한 산림으로 뒤덮여 있다.

802년 자야바르만 2세(802~834)가 세운 ‘캄부자’ 왕국에서 비롯되었으며 한때 미얀마, 라오스, 타일랜드를 위시한 동남아시아 대부분을 다스렸던 힘센 왕국이었으나 자야바르만 7세 때의 무분별한 사원건립과 집권층의 부패로 말미암아 점점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1431년 타일랜드가 침공하였고 모든 학문이 분서갱유를 당하고 역사는 말살되었다. 세상에서 사라진 존재로 밀림 속에 은둔하던 앙코르와트 왕조의 자취는 1860년 프랑스의 식물학자이자 탐험가였던 ‘앙리 무어’에 의해 우연한 계기로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앙코르 유적들은 수도 프놈펜과 씨엔립을 필두로 약 1,000여 개에 이르며 크고 작은 사원의 모습으로 도시 곳곳에 흩어져 있다.
역대 왕들은 자신의 위대함을 후세에 기리기 위해 경쟁하듯이 사원을 건설하였다. 인간에게 종교는 아편과 같다.

왕은 사원건설을 통해 왕권의 지배이념을 강화시키려 했을 것이고, 백성은 신에게 의탁해 힘든 삶의 고통을 잠시라도 덜어보려 했을 것이다.

타일랜드 아유타국과의 전쟁으로 말미암아 왕조가 몰락하자 동남아시아 대부분의 나라가 그러했듯이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역사를 걷게 된다.

1863년부터 프랑스의 식민 산하로 관리되기 시작하였고 2차 대전 때는 일본의 식민지로 점령되는 등 질곡이 많았으나 1953년 독립을 하였고 불교 사회주의 국가로 근대사에 편입하였다. 1975년 폴 포트 정권(1975~79)이 집권하며 시도한 캄푸치아 프롤레타리아 혁명 탓으로 경제와 사회 분야가 처참히 박살이 났다.

캄보디아의 경제는 30년 이상 후퇴해버렸다.
공산정권 ‘크메르루주’가 들어섰고 이어 아시아 최대의 학살 ‘킬링필드’의 비극이 일어나게 된다. 이때 국민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200만 명이 몰살되었다.

이후에도 참극은 그치지 않아 베트남과의 전쟁을 치렀고 독립군과 정부군의 내전 속에 국가는 만경창파의 돛단배와 같이 앞날을 확신할 수 없는 항해를 위태롭게 하고 있었다.
국제사회의 관심과 도움을 받아 1991년 오랜 세월을 이어온 내전이 종식되었다. 현재는 친서방적 입헌군주국으로 Norodom Sihomoni 국왕이 있고 행정 수반은 Hun Sen 총리이다.

현재 정부는 개혁과 개방의 기치를 내세우고 외자 유치와 선진국의 자본과 기술의 도입, 앙코르와트 관광과 주변 인프라를 구축하여 착실히 GDP를 증진하고 가난의 대물림을 종식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세계적인 관광도시이지만 씨엠립(Siem Reap)은 인구 15만 명이다.
아침부터 40도를 넘나드는 더위는 참기 어려웠다.땡볕에 30분을 걷고 있으면 피가 마를지도 모른다는 위협까지 드는 살인적인 폭염이었다.

앙코르 유적을 탐방하기 위해 매표소에서 3일 권의 증명패스를 미화 40달러에 구매했다. 이 나라에서는 아직 자국 화폐인 리엘(Riel)보다는 달러를 더 신뢰하고 있다. 호텔과 식당 어디에서나 그러하였고 거지들조차 ‘원 달러’를 염불하듯 외웠다.

‘앙코르 톰’은 앙코르시대 최고 성군으로 추앙받는 자야바르만 7세(1181~1219)가 건설한 국가사원이다. 21년 동안 재위하면서 현재 앙코르 유적의 거의 절반을 건립하였다.

주변에 바푸온, 코끼리 테라스, 나왕의 테라스, 피메아나카스 등의 유적이 몇 백 미터를 반경으로 모여 있었다. 백인 몇 무리와 관광객들이 뒤섞여 20인승 버스에 올라탔다.

좁은 성문을 아슬아슬하게 통과하여 북쪽으로 올라가니 거대한 두상이 보인다. 바이욘 사원이었다. 1181년 왕위에 즉위하면서 자야바르만 7세는 국교를 불교로 바꾸었다.
▲ 바이욘 사원

바이욘 사원은 대승불교 사원으로 49채의 관세음보살이 사면으로 조각되어 있다. 지그시 내리깐 눈에 긴 귀, 다소 두꺼운 입술. 관세음보살은 큰 귀로 중생의 모든 호소를 귀담아듣고 위기에 처한 이가 도움을 요청하면 33가지의 화신으로 나타나 도움을 준다고 하였다.

사원은 고요하였고 치자 빛 승복을 입은 승려들이 간혹 왔다 갔다 하였다. 스님들을 자세히 보니 눈썹이 없었다. 가이드 찰리에게 물어보니 “삭발할 때 같이 밀어유”하고 다소 무뚝뚝하게 대답하였다.

800년 전 원나라 사절단이었던 ‘주달관’이 이곳에 머물며 쓴 ‘진랍풍토기’라는 책이 있다. 그 중 흥미로운 내용이 있는데 승려들은 마을의 모든 여성에게 ‘초야권’을 가진다.
시집을 가기 전의 신부는 첫날밤을 승려와 함께하고 그녀들의 순결을 먼저 ‘상납’ 해야한다.

믿음에 대한 존경과 복종의 의미랄 수도 있다지만 종교에 귀의해 오욕(五慾)을 멀리하고 평생을 신실한 정신수련에 매진해야 하는 스님에게 초야권이라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풍습이다.

뱀신의 사원인 피메아나카스(Pimeanakas)로 향했다. 자야바르만 5세(968~1001)에 의해 건립된 이 사원은 뱀신 ‘나가’를 섬겼다. 계단은 거의 수직의 각도로 매우 위태롭다.

자칫 실수하면 아래로 굴러떨어질 위험이 만연하였다. “계단을 좀 널찍하게 만들지. 왜 이래 좁고 가파르게 만들었어요? 왕도 오르내리며 애먹었겠네” 라고 혼잣말로 투덜거리자 함께 걷던 일행이 “신의 세계는 쉽게 가는 길이 아니므로 굽히고 기어서 오르며 존경을 나타내라는 의미겠죠”라고 하였다.

설화에 따르면 왕은 사원의 꼭대기에 있는 탑에서 매일 밤 뱀신과 동침하여야 했다. 뱀과의 정사라니 참으로 야시시한 상상력이다.
하루라도 이 일을 거르면 뱀의 노여움을 사 나라에 큰 재앙이 닥친다고 믿었단다. 왕의 믿음도 좋지만 허구한 날 독수공방하는 왕비는 무슨 죄람? 하고 뜬금없는 생각이 든다.

어느 나라이든 서민층에는 애니미즘(animism)을 숭상하는 민간신앙이 존재하고 있다. 생물도 믿고 무생물도 믿는다. 삶이 퍽퍽하기에 풀뿌리라도 잡고 빌어보자는 심정이었을까?

구경도 좋지만 40도의 태양 아래서는 유람도 곤욕이다. 잠시 반얀나무 아래로 피신하여 손부채 질을 하고 있으려니 꾀죄죄한 꼬마가 엽서와 음료수를 들고 와 커다란 눈망울로 구매를 종용하였다. 코카콜라를 원 달러에 샀는데 숭늉처럼 미지근하였다.
▲피메아나카스

노을이 내리기 전에 프놈바켕(Phnom Bakeng)으로 떠나야 한다고 찰리가 재촉하였다. 캄보디아 최대의 아름다운 노을이 그곳에서 피어나니 안 보면 후회한다고 야단이다.
차에 올라타 포놈바켕으로 달렸다. 9세기 후반 야소바르만 1세(889~912)가 지은 이 사원은 파괴와 생식의 신인 ‘시바신’에게 헌납되었다.

신들이 거주하는 천상의 산인 ‘메루산’을 본 딴 형태로 지어졌으며 신에게 경건함을 표시하기 위해 70도 각도의 깎아지른 계단을 기어서 올라가야 한다. 입구부터 쉽지 않았다. 가방을 찰리에게 맡기고도 위태로워 두 번을 미끄러졌다. 15분을 분투해 정상에 올랐다.

사위가 푸르스름하게 물들더니 붉은 노을이 서서히 내려온다. 물속에 떨어뜨린 잉크처럼 서서히 번져가며 푸른색과 오렌지색이 섞여들며 천상의 아름다움을 연출하였다.
노을을 보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전세계 여행자들의 입에서 같은 시각 비슷한 목소리로 찬탄의 신음이 흘러나온다.

짝을 지어 온 연인들은 놓칠세라 서로를 붙들고 입술 부비기에 매진하였다. 아름다운 풍경을 볼 때 기쁨 같기도 하고 슬픔 같기도 한 모호한 감정이 가슴을 알싸하게 만든다. 짝이 없는 사람은 더 외로워진다. 인간은 감정을 공유하며 기쁨을 느끼는 존재이니 신이 애초부터 혼자서는 살기 어렵게 만들어 놓았나보다.

저녁 식사는 씨엔립에 있는 평양냉면이었다. 1964년 북한과 수교하면서 이곳에 음식점을 유치했는데 현재는 정부가 아닌 민영기업에서 운영한다고 한다.

이른 시간이었는데도 넓은 식당은 손님들로 가득 차 있다. 아담한 체구의 20대 초, 중반의 북한 아가씨들이 음식을 나르다가 갑자기 무대로 올라가 노래를 부르다가 춤을 추다가, 또 접객 하고 있었다.

“뭐가 맛있어요?”라고 하니 “가릴 것 없이 모두가 맛있습네다”라고 응답하는데 이북 억양이 꽤 독특하였다.

들쭉술과 단고기 수육, 평양냉면을 주문하였다. 음식의 맛은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은 듯 심심하고 담담하였다.
이어 마이크를 쥔 복무원이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하며 노래를 시작하고 후렴은 손님들이 따라서 합창을 하였다.

나이가 어느 정도 무르익은 분들의 표정은 먼 곳을 헤메는듯 아득하고 눈빛은 촉촉하였다.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고기와 냉면에 매진하였지만, 식당을 나서고부터 어쩐지 하얀 저고리에 까만 치마를 입은 여인이 부르던 노래의 가사 ‘심장 속에 박힌 그대’가 오래도록 뇌리를 맴돌았다.

숙소로 돌아왔다. 아침부터의 강행군이었던지라 피곤하였는데도 침대에 누우니 쉽사리 잠이 오질 않는다. 배낭을 뒤적거려 공항에서 구입한 잭 다니엘, 40도의 독한 술에 콜라를 섞어 한 잔 가득 마셨다. 환청처럼 밤새 새 우짖는 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모닝콜 소리를 듣고 잠이 깼다. 사람이 없는 조용한 공간에서 앙코르와트(Ankorwat)를 보기 위해 찰리와 함께 새벽 5시에 만나기로 했었다. 호텔 아래에 몇 대의 오토바이가 대기하고 있었다. 차가운 공기가 알싸한 새벽, 푸르른 효색을 뚫고 오토바이는 바람처럼 달렸다.
▲ 앙코르와트 사원

앙코르는 왕도(王都)를 뜻하며 수리야바르만 2세(1113~1150)가 비슈누 신을 모시기 위해 지은 사원이다. 거대한 직사각형의 외형으로 동서로 1500미터 남북으로 1,300미터의 넓이에 달한다.

크메르 왕조 시대의 가장 걸출했던 장인들이 도성으로 호출을 받고 왕의 지시 아래 30년 이상을 건축하여 이루어낸 앙코르 예술의 정수이다.

캄보디아의 상징이며 보물인 가장 위대한 건축물. 신의 세계의 들어서기 위해서는 약 1.5km의 해자를 건너야 한다. 해자는 성을 둘러싼 연못으로 우주의 바다로 상징된다. 사원은 유적 중 유일하게 서쪽을 향해 지어졌다.

고대 크메르인들은 서쪽이 죽음과 저승을 뜻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망자의 무덤이라는 별명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사원 내부 어디에도 사람이 거처할만한 공간은 없었다.

앙코르사원을 둘러보다 제3화랑의 지옥도를 보았다.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저승으로 불려가고 지옥의 왕 야마신의 심판 아래 죄의 등급에 따라 32개의 각기 다른 지옥으로 추방된다. 불에 타고, 혀가 뽑히고, 죽었다가 다시 부활하여 또 죽는 형벌을 받고 있다.

고요함 속에 지옥도를 보고 있으려니 오싹한 기운에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어느 신들린 장인이 잔혹한 역사의 비극 ‘킬링필드’를 미리 예견한 건 아니었을까 하는 섬뜩한 생각이 든 탓이다.

관람을 마치고 비포장도로를 한참 달려 당도한 곳은 쯔응아익(Choeung Ek)이라는 곳이었다. 캄보디아 현대사의 비극 킬링필드의 지옥을 재현해놓은 곳이다. 정치범 1만 2천 명을 처형하여 구덩이에 집단 매장했는데, 약 9천 명의 유골만 발굴되었다.

시체를 묻었던 구덩이만 40개가 넘으며, 지뢰 탓에 접근금지 구역까지만 발굴했다 한다.

어느 구덩이에서는 목 없는 시체만 200구가 나왔고 또 어느 구덩이에서는 어린아이의 유골만 100구 이상 발견되었다고 했다. 1985년 8천구의 이름 모를 유골이 발견되어 이를 추모하는 추모탑을 세워놓았다.

폴 포트는 집권 당시 중학교 건물이었던 곳을 감옥으로 증축하여 S-21이라고 명명하였고 시민을 닥치는 대로 잡아들여 고문하고 처형하였다. 중국의 문화혁명을 베낀 ‘캄푸치아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기치를 앞세우고 어설픈 공산주의를 도입하려 했다. 안경을 쓴 자, 숫자를 읽는 자, 글을 아는 자, 손에 굳은살이 없는 자, 온갖 명분을 세워 사람을 죽였다.

S-21에는 2만 명이 수감되어 있었는데 일곱 명만 살아남았다. 학살에 가담했던 크메르루주군의 평균 연령은 12~16세에 이르는 소년병들이었다고 한다. 순수한 이들은 자비심을 모른다. 자비로움은 삶의 희로애락에 시달리며 자연 발생하는 감정이다. 그들이 삶에 채 여물어지지 않아서 그토록 주저 없이 잔혹할 수 있었는가 보다.

지옥이 너무도 참혹하여 차라리 눈을 감았다. 잊어버리려 해도 으스러진 백골들의 눈이 있었던 빈 구멍이 자꾸만 떠올랐다.
▲ 반테이 스레이

3일째 되는 날, 반테이 스레이(Banteay Srei)로 갔다. 붉은 사암과 라테라이트로 건축이 된 이곳은 석양의 빛을 받으면 사원 전체가 장밋빛으로 빛난다. 앙코르 유적 중 가장 여성적인 미를 간직한 곳으로 ‘여인의 성채’라는 어여쁜 별칭이 있다.

섬세한 세공이 정성을 다해 아름답게 치장한 여인의 마음같이 느껴졌다. 이 유적은 전쟁과 내전을 거치며 많이 훼손되어 다시 만들어졌다.

본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놓고 해체한 후 가장 실물에 가깝게 복원하는 아나스틸로스 공법으로 복원되었다.
힌두교의 선녀쯤 되는 ‘압살라’가 많이 조각되어 있었는데 프랑스 정치가이자 작가인 ‘앙드레 말로’가 이곳에 왔다가 부조된 압살라를 파내어 밀반출하려다 국제적인 망신을 산 일화가 있다. 다행히 다시 돌려받아 제자리에 잘 모셔 두었다고 한다.

간단하게 국수로 요기하고 다시 차를 몰아 타프롬(Ta Prhom)사원으로 향했다. 이곳은 안젤리나 졸리가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 ‘툼 레이더’에 등장해 더욱 유명세를 타는 곳이다.

자야바르만 7세가 어머니에게 바친 불교 사원이었는데 왕의 사후에 힌두교 사원으로 개축되었다. 자연과 인간의 합작품과 같은 이 사원은 거대한 예술작품 같다.
반얀나무와 카폭나무의 우악스런 뿌리가 사원을 파고들어 으스러뜨릴듯 움켜쥔 형상이다. 나무를 분리하면 사원이 해체될 위험이 있어서 그냥 둔다고 하였다.

사원 내부에는 총탄 자국 같은 작은 구멍들이 뽕뽕 뚫려 있었는데 과거에 내부를 치장하기 위해 루비와 다이아몬드, 진주를 박아 넣었던 자리라고 했다.

현재는 도둑맞고 유실되어 구멍의 흔적만 남았다. 나무들이 만든 정글에 사로잡힌 어머니의 사원은 그 구조가 미로와 같다. 미로를 헤매다가 나서면 엉뚱한 곳으로 배출되고 하여 재미가 있다. 이곳은 앙코르 유적군의 백미로 인위적인 예술미와 숭고한 자연미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독창적인 아우라를 만들어낸다.
▲ 타프롬 사원

마지막 날 들린 곳은 동양에서 가장 큰 담수호인 톤레삽 호수였다. 가는 길은 울퉁불퉁 요철이 심했다. 버스는 붉은 속살을 드러낸 황톳길을 덜컹거리며 뜀박질한다.

마을 초입에 들어서자 누더기를 걸친 반라의 꼬마들 한 무리가 몰려나와 버스를 따라 같이 달린다. 톤레삽은 메콩 강의 지류이다. 수량이 풍부하고 물고기와 수생식물들이 많아 강을 주변으로 기다란 수상가옥들이 생성되어 있었다.

싯누런 황토물이 유유히 흐르고 물속에 문어처럼 발이 많은 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아이들은 양철로 만든 대야를 타고 나뭇가지로 노를 저어 학교를 오간다. 대나무로 만든 집은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고 변변한 세간도 없지만 햇살 아래 아이들의 미소는 밝고 맑았다.

그러나 클수록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세상은 욕심 없이 살고자 하는 자도 마음 편하게 내버려 두는 곳이 아니다. 보트를 타고 호수를 한 바퀴 돌았다.
물 위에 교회와 경찰서, 학교들이 둥실둥실 떠다녔다. 그물로 민물고기를 잡는 어부들의 손길이 바쁘고 호수에서 설거지를 하는 아낙들의 몸짓도 일상적이다.

삶은 어느 곳이든 뿌리를 내리게 한다. 정착민들은 땅의 힘에 붙들려 쉽사리 떠나지 못한다. 삶이 그들의 영혼을 힘들게 할지라도.

찰리가 수상카페에서 맥주를 한잔하자고 하였다. 카페라지만 호수위에 널빤지와 철근으로 지은 가건물이다. 비닐 소파에 앉으니 갈색 머리의 아가씨가 미소를 띠고 와 차가운 앙코르 맥주와 삶은 민물새우를 한 바가지 갖다 놓고 갔다. 맥주를 마시며 일행들과 악수를 했다. 이제 귀속해야 한다. 한국에 두고 온 나의 삶으로.

캄보디아와 태국의 국경도시인 포이펫으로 왔다. 이곳에서 심사를 받고 육로로 태국으로 넘어가 한국으로 갈 예정이었다.

앙코르와트 사원을 본 딴 관문 아래 출국심사를 하는 곳이 있었다. 여행객과 현지인이 뒤섞인 긴 줄이 건물 밖까지 한참을 이어졌다.
심사카드를 쓰고 있는데 곁에서 작은 소란이 있었다. 정복을 입은 관리인이 꾀죄죄한 몰골을 한 조그만 사내아이에게 소리를 지르며 머리에 잇따라 꿀밤을 먹이고 있었다.

아이는 주먹을 피하지 않으면서 사내를 매섭게 쏘아보고 있었는데, 약이 오르는지 눈물이 흘러 얼굴이 시커멓게 얼룩져 있었다. 태국에서 담배를 몰래 들여오다 걸린 것이었다. 국경에서 이와 같은 일은 매일같이 빈번하게 일어난다고 했다.

캄보디아는 1차 산업인 농, 어업 외에 제조업과 건설업등 대부분의 산업이 매우 열악하여 석유, 전기, 기계를 비롯해 담배, 커피, 의류와 같은 생필품과 의약품도 거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많은 남자들이 전쟁에 사망하고 공산당 집권 시절 처형되었다. 그래서 인구의 과반수가 여자와 아이들이다.

아이는 생계를 위해 국경을 넘나드는 것이 분명했다. 꼬마의 작은 어깨너머로 무력한 어머니와 배고픈 여동생의 얼굴이 환상처럼 떠올랐다.
▲ 톤레삽 수상촌의 아이들

캄보디아는 90년대 초까지 국민의 60%가 농업에 종사했다. 전쟁과 오랜 내전의 영향으로 이렇다 할 기술의 발전이 없었기 때문이다. 1995년부터 유엔과 IBRD의 차관과 프랑스와 일본, 미국과 같은 선진국의 원조가 있었으나 여전히 노동 집약적 경공업에 국한되어 있고 의류 봉제 산업과 고무수출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산업이 거의 없었다.

연간 200만 명의 관광객이 캄보디아를 찾지만 숙박과 교통, 편의시설 등의 관광 인프라가 아직 많이 부족하다.

현 집권당인 캄보디아 국민당(CPP)은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원동력인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벤치마킹하여, 1996년부터 1차 5개년 계획을 수립하여 시행하였고 2차, 3차 계획을 거쳐 2009, 2013년 국가전략개발계획 업데이트 버전을 발표하는 등 경제 발전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따르면 2013년까지 도로, 항만, 공항, 철도, 전력 등의 사회간접자본 및 인프라 확충과 농업생산의 증대를 꾀하여 GDP를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2006년부터 부동산 건설 붐이 일어나면서 건설 부문도 경제 성장의 중심으로 대두하고 있다.

2008년 발생한 미국발 금융위기로 관광업과 경제성장이 내림세에 이르고 있지만, 이는 전 세계적인 현상으로 시간이 지나면 차츰 나아지리라 전망하고 있다. 국제사회가 지켜보고 응원하고 있다. ‘크메르 제국의 영광이여! 다시 한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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