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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기행] 방콕 시위사태와 민주주의의 길
칼럼니스트 윤혜영 geo0511@hanmail.net
  • 입력날짜 : 2010. 10.04. 20:04
홍콩에서 잠시 스탑 오브 후에 1690km의 하늘길을 달려 태국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2010년 9월 방콕의 도심은 평화로웠다. 지난 몇 개월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반정부시위대와 군부간의 치열했던 항쟁은 잠시 휴전 중이었고 상인들의 지루하고 고요히 반복되는 일상과 시민들의 분주한 움직임, 관광객들의 우두망찰 속에서 시간은 뉘엿뉘엿 흘러가고 있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방콕시위의 몸살 중에도 미소의 나라 태국의 관광산업(GDP의 8%를 차지)은 차분히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몇몇 레스토랑과 호텔, 건물등은 시위로 전소되거나 피해를 입어 복구가 진행되고 있었다.

방콕사태의 여파로 줄어든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도심의 많은 호텔이 1+1의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 덕에 체류경비가 절반은 감축되는 기쁨이 있었다.

서민들의 삶 속으로, 방콕의 명물 수상시장

에어텔로 지정한 호텔에 짐을 풀고 비행의 피로를 풀기 위해 마사지를 받으러 나섰다. 태국의 안마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국교인 불교를 전파할 때 포교의 수단으로 안마가 널리 행하여졌다고 한다.
안마의 기술을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학교도 도심 곳곳에 있고 왕궁에도 마사지 학교와 체험장이 있다. 국가에서 장려할 만큼 타이 마사지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하다.

길을 걷다 적당한 곳에 들어가 전신마사지를 선택했다. 한 시간에 200바트, 한화로 약 8,000원 가량이다. 어느 곳이나 안마사의 기술은 대동소이하며 각각의 동작이 요가와도 비슷하다. 담당 안마사는 땀을 뻘뻘 흘리며 아주 열심이다.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니 북부의 치앙마이라고 했다.

방콕시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니 정치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부자만 배불리지 말고 가난한 사람도 성공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태국의 현대사는 한국의 현대사와 비슷한 면이 많은 것 같다.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아고고바나 트랜스젠더 쇼, 쏘이 카우보이의 창녀촌과 같은 섹스산업은 일제 식민치하의 위안부나 기지촌을 떠올리게 한다.

반복되는 쿠데타에서는 70, 80년대 군사정권의 야욕과 시민들과 학생들의 숭고한 피를 뿌리게 한 4.19와 5.18, 광주항쟁이 연상되었다.

밤이 내리면 환락가로 변신하는 팟퐁일대

태국의 쿠데타는 1932년 국왕 통치의 절대왕정국가에서 입헌군주제로 정권을 바꾼 군부세력에서부터 출발한다. 태국의 기득권층인 왕과 왕족, 군부와 화교를 비롯한 상류층들은 정권을 틀어쥐고 이권이 되는 모든 사업들을 손에 넣었다.

서민들의 값싼 노동력을 착취하며 착실히 부를 일구었으며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한 19번의 쿠데타를 일으키며 80년의 세월 동안 대적할 자 없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다.

이번 방콕사태는 국내정세를 모르는 이의 눈에는 단순히 정부보안군과 폭력시위대의 대립으로 보이지만 이는 야만의 군부독재에 맞서서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태국 서민들의 피눈물 나는 저항이다.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그들을 뉴스에서 폭도로 몰아가는 행태가 몹시 못마땅하였다.

반정부 시위대는 대개가 농업이 생계인 태국 북부와 북동부 출신들, 도시 빈민층과 경제개발에서 소외된 지역의 농공상인들이다. 서민들은 목숨만 겨우 연명하며 기득권층들에게 피를 빨리고 있었다.
넘어져서 일어나려면 또 다시 등을 밟고 짓뭉개었다. 이때 통신 재벌로 성공한 ‘탁신 친나왓’이 나타났다.

그는 군부세력에 정면으로 대응하며 친서민 정책을 펼쳤다. 2001년 국민선거로 선출된 탁신은 전임 정권과 달랐다. 서민층의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집권 기반을 닦고 국영기업 민영화와 적극적인 외자유치로 재임기간 동안 유례가 없는 고도성장을 일구었다.

태국 정치사 연표

‘탁시노믹스’ 정책을 널리 펼쳐 빈민층들에게 30바트만 내면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혜택을 주었고 저소득층의 생계비를 지원하였으며 도, 농간의 갈등해소를 위해 노력했다.

또한 마피아와 군벌들의 돈줄인 섹스산업을 강력하게 규제하여 ‘섹스관광 태국’의 이미지를 몰아내고 공무원의 정원을 축소하여 관료들의 힘을 억제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행태가 왕실을 비롯한 기득권층과 중, 상류층들에게 큰 반발을 샀다.

2006년 탁신이 조기 총선을 통해 재집권을 하였다. 지지자는 인구의 60%를 차지하는 농민과 서민들이 대다수였다. 이에 군부는 반(反)탁신 쿠데타를 일으켰다. 총칼과 탱크로 무장하고 탁신과 지지세력 처벌에 나섰다. 시민들은 크게 분노하였다.

친(親)탁신과 반(反)탁신, 레드셔츠와 옐로셔츠로 대변되는 이들은 저소득층과 기득권층으로 나뉘어 혈투에 돌입하였다.

잘못은 군부의 무력적인 도발에 있었으나 푸미폰 국왕은 탁신의 비리에 대한 책임을 물어 쿠데타 세력의 손을 들어주었다. 탁신이 축출당한 것은 재임 중 몰래 비자금을 챙긴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자기 소유인 태국 최대 통신그룹의 주식을 모조리 싱가포르에 매각하여 막대한 이익을 챙겼으며 이 와중에 그를 지지하던 시민들도 상당수 등을 돌렸다.)

그가 상당한 탈세를 한 것은 맞지만 (이놈이나 저놈이나 도둑놈은 매한가지) 임기 중 행한 친서민 정책과 기득권층에 대한 신선한 반발로 인해 시민들은 탁신에 대한 향수를 잊지 못하는 것이다. 탁신정권은 실각하였고 탁신은 영국과 두바이를 거쳐 유고연방의 여러 나라들로 도피를 감행했다. 그 와중에도 연말 총선이 있었고 탁신의 지지 세력이 또 다시 승리했다.

2008년 선거에서 압승한 친(親)탁신파인 ‘솜차이 웡사왓’이 총리가 되었으나 쿠데타로 여지없이 축출당하고 선거도 없이 ‘아피싯 웨자치와’가 당선되었다. 탁신을 이어 27대 총리가 된 ‘아피싯’은 태국 역사상 최연소 총리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학위를 마친 상류층 출신의 미남자이다.

그러나 서민들과 농민층은 자신들의 편에 서서 정책을 펼쳤던 탁신과는 정반대의 양상을 한 아피싯을 불신하였다. ‘과부 사정은 홀아비가 가장 잘 안다’라는 속담도 있지 않는가. 아피싯은 왕족과 군부정권의 ‘허수아비 총리’라며 조롱을 당하였다.

시민들은 아피싯을 몰아내기 위해 투쟁에 돌입했다. 잠잠했던 피바람이 또 다시 불어 닥쳤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의 치열한 투쟁은 무력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한 탈출구였다. 탁신은 해외 망명 생활을 계속하면서 인터넷 동영상과 국제전화, 측근들을 동원하여 지지 군중을 선동하고 있다. 그가 만약 태국으로 되돌아오면 2년의 징역형을 받아야 한다.

국제공항 전면에 프린트 되어 있는 푸미폰 국왕의 모습

항상 대립의 ‘중심 추’ 역할을 맡아왔던 현 국왕 라마 9세 푸미폰 국왕은 ‘살아있는 부처’로 국민들의 절대적 지지와 사랑을 받아왔다. 그는 미국에서 태어나고 스위스에서 학위를 이수했으며 올해로 재위 64년을 맞았다. 1946년 즉위 이래 태국이 정치적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해결사’ 역할을 맡아왔다.

1973년 민주화 사태 시에 시민들의 편에 서서 ‘타놈’ 군사정권을 실각시켰고 1992년 군사 쿠데타 때도 문민정부를 이양하여 ‘수친다’ 장군을 망명길에 오르게 했다. 집권기간 동안 총19번의 쿠데타가 일어나고 헌법이 16번 개정되었어도 국왕의 권위는 흔들리지 않았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 저 멀리 보이는 국제공항 전면에 국왕의 초상이 프린트 되어 있다. 방콕에서 일주일 머무는 동안 기사와 가이드 노릇을 해준 ‘칫’에게 ‘당신들의 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고 물어보았다.

“왕은 살아있는 부처이고 태국 국민의 대다수는 불교이다. 왕이 곧 국가이기 때문에 우리는 왕을 사랑한다” 는 대답이 돌아왔다.

반얀트리 호텔 61층의 럭셔리한 레스토랑

서민들의 한 끼 식사, 30바트의 국수

방콕의 명소중 하나인 반얀트리 호텔의 61층 루프트 탑 레스토랑의 스파게티는 한화로 약 6만원 정도이다. 호텔 아래에 있는 뒷골목 포장마차의 국수는 30바트이다. 한화 1,200원 가량이다. 서민들은 이곳에서 국수로 간단하게 배를 채운다.

나도 그 틈에 끼어 국수 한 그릇을 청했다. 옆에는 동냥하는 걸인과 꾀죄죄한 아기를 업은 젊은 엄마가 아기와 함께 꼬치를 나눠 먹고 있다. 지난 밤 반얀트리 호텔에서 먹은 스파게티가 떠올라 입맛이 떨떠름했다. 태국의 어디에서나 극과 극의 삶을 엿본다.

대를 이은 가난에 적응한 듯 체념한 듯 그들의 눈빛에는 동요가 없다. 아가씨들은 할아버지뻘은 족히 되는 유럽 남정네의 팔짱을 끼고 웃으며 거리를 걷는다.
그녀들이 서양인의 동거녀로 살다가 버림받고 미혼모가 되는 것은 무시로 일어나는 일이다. 북부의 빈민층은 채 자라지 않은 딸을 인신 매매단에 팔기도 한다.

나이가 들면 늙은이들을 상대하는 매춘굴에 되팔려간다. 병에 걸려 죽기 전까지는 벗어날 수 없는 굴레이다. 에이즈에 걸려 목숨을 잃는 이들도 상당하다. 태국은 아시아에서 후천성면역결핍증 환자가 가장 많이 창궐하는 곳이다.

특급호텔의 뒤켠에 위치한 빈민층들의 삶, 낚시로 무료한 시간을 떼우고 있다.

국가는 전쟁이나, 내란, 자연재해와 같은 사건으로 한방에 무너질 수 있고 잘못된 정권으로 인해 철이 부식되어 가듯 서서히 망해가기도 한다.

‘국제평화기금’이 발표한 실패한 국가순위에서 1~5위까지는 아프리카의 소말리아, 짐바브웨, 수단 등이 올랐고 아시아에서는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북한이 올랐으며 중동에서는 이라크와 이란, 아메리카 대륙은 얼마 전 대지진으로 무정부 상태가 된 아이티 등이 불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정국안정을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법치주의의 토대와 이를 뒷받침할 기관이 설립되어야 하고 훌륭한 통치력을 갖춘 지도자가 나서야 한다. 국민을 선동하여 판단을 흐리게 하고 자신들의 배불리기에만 급급했던 ‘프로파간다’들이 국가를 파탄에 이르게 한 경우는 캄보디아와 미얀마, 북한과 파키스탄, 이라크 등을 보면 충분히 알 수 있다. 선장을 잘못 만난 배가 어떻게 항해하여 선원과 승객들을 모두 죽음에 이르게 하는지를.

태국 방콕의 랜드마크 중 하나, 왕궁

선거철이 다가오면 투표는 하지 않고 여행을 가거나 나들이를 하는 시민들을 더러 본다.

그들은 ‘찍을 사람이 없어서’라고 말하며 관심을 거부한다. 참으로 걱정이 되는 작금의 사태이다. 어떤 인물이 당선되느냐에 따라 국가의 존망이 달려있고 나아가 한 가정의 행복과 불행이 엇갈리는데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살기가 힘들다’ 운운하고 지도자들을 욕한다. 코앞만 바라보고 대문 밖은 나몰라라 하는 형국이다. 투표는 국민의 권리이고 참여이다. 내 나라를 지키는 순수한 힘이다.

민주화 투쟁은 단순히 독재자를 물리치고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이 아니다. 그것은 국가의 헌정을 부정하고 민주적인 절차를 무시하며 개인 자유와 권리를 박탈하는 권위주의적 통치에 대한 모든 저항을 의미한다.

국가는 우리 손으로 만들어가야 할 역사이고 우리 모두는 국가를 이루는 소중한 구성원이다. 무관심과 체념은 ‘화(火)’라는 부메랑이 되어 우리에게 되돌아온다. 지금 우리가 밟고 선 이 땅이 자유와 인권을 위해 스스로를 져버린 많은 이들의 ‘아름다운 희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모닝뉴스 기자 webmaster@morningnews.or.kr        모닝뉴스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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