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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가정의 달 5월을 생각하며
  • 입력날짜 : 2007. 05.07. 15:39
김환영 거제시부시장
신록이 짙어가는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가만히 눈을 감고 어버이날에 대한 생각과 부모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해 잠잠히 생각해 봅니다.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으로 예부터 효를 중시하였습니다.

우리 거제시에도 ‘효행’으로 유래된 연초면 효촌마을의 장사랑 이돌대란 자랑스런 조상이 있었습니다.

중종대왕실록 제 30권에 기록된 인물로 중종 12년(1517년) 10월 6일 당시 경상도 관찰사 김안국이 조정에 올린 장계에 의하면 효촌마을에 거주한 효자 이돌대는 하늘이 부여한 순정함으로 어버이를 지극히 섬기고 봉양하였으며, 일곱 살에 아비를 여의었는데,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장례를 치를 때 직접 흙과 돌을 져 날라 봉분을 만들었고, 어려운 가정 형편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를 모시며 매 달 세 번씩 음식을 풍성히 장만하여 어머니를 즐겁게 하였습니다.

어머니의 병환을 고치기 위해 계절도 잊은 채 겨울에 울면서 죽순을 구하고, 얼음을 깨고 숭어를 잡아 맛있는 음식을 공궤하여 어머니의 병을 낫게 하였다고 합니다.

부모님이 자식을 길러준, 그 위대한 사랑과 희생을 생각해본다면 우리 조상의 이와 같은 효행은 어쩌면 우리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현대문명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그로 인해 개인주의가 팽만한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이와 같은 효성을 가지고 진정으로 부모를 공경하고, 효도하는 사람들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아직까지 가정의 곳곳에서 효행을 다하고 있는 분들이 많이 계실 것입니다.
다만 표면적으로 봤을 때, ‘효’의 이념은 과거와 비교해 많이 퇴색한 것이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결혼을 하고 난 뒤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살고자 하고, 부모 부양의 의무를 형제자매간에 서로 떠넘기려 하는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뉴스나 신문과 같은 매체에서 자식이 부모에게 폭력을 행사했다는 내용의 보도가 종종 되풀이되기도 합니다.
한 예로, 지난 4월 18일 오전 11시경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충격적인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었습니다.

공익근무를 하고 있는 23살 윤모군이, 그의 어머니가 일하러 나가지 않는다고 꾸짖자 부엌에 있는 흉기로 어머니를 4차례나 찌른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물론 아주 극소수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요즘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효’라는 개념이 얼마나 퇴색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극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패륜아들의 이야기를 뉴스나 신문을 통해 종종 접하곤 합니다.
그런데 위의 예로 든 사건에는 특별한 모정의 뒷이야기가 숨겨져 있습니다.
칼에 찔린 그의 어머니가 아들의 만행을 숨기기 위해, 경찰에게는 강도를 당했다고 말할 테니 아들은 어서 도망가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실제 강도가 든 것처럼 집안을 어질러놓고 피 묻은 옷을 갈아입고 달아난 아들은 무인카메라에 덜미가 잡혀 체포되었지만,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어머니의 크나큰 사랑을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하게끔 합니다.

물론 무조건적으로 자식의 죄를 덮으려고 한 한씨의 행동이 옳은 일이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아무리 자식이라지만 자신에게 칼을 겨눈 사람을 배려하고 보호하고자 하기는 힘든 법입니다.
그것은, 티끌만큼의 조건도 내세우지 않는, 어머니의 무조건적이고 위대한 사랑이었기에 가능한 행동이었던 것입니다.

효도를 다하지 못하고 부모를 여읜 슬픔을 이르는 말로 “風樹之嘆(풍수지탄)”이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공자가 부모를 여읜 한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사람이 ‘무릇 나무는 조용히 있고자 하나 바람 잘 날이 없고, 자식이 부모를 모시고자 하나 부모는 이미 계시지 않는다(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 수욕정이풍부지 자욕양이친부대) 라며, 생전에 부모님께 못 다한 효를 슬퍼했다는 데서 유래된 말입니다.

누구나 과거에 잘못했던 불효의 기억을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만 과거의 일은 돌이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행하지 못한 ‘효’는 언젠가 커다란 슬픔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우리가 생을 다하는 그 순간까지도 다 갚지 못할, 부모님의 은혜를 다시 한번 가슴깊이 새겨보았으면 합니다.


모닝뉴스 기자 webmaster@morningnews.or.kr         모닝뉴스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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