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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되짚기] 상투하고 여름나기
  • 입력날짜 : 2004. 06.26. 23:29
상투 속 정수리 부근의 머리카락은 모두 깎아내고 주변 머리카락을 빗어 올려 상투를 틀었다.
사극이나 옛 그림에서 상투를 튼 모습을 보다가 이런 의문이 들 때가 있다. 무더운 여름에 너무 덥지 않을까. 머리에서 발산되는 열기를 어떻게 감당했을까?
그러나 염려 마시라. 이 점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 옛 사람들은 상투를 틀 때 열기를 피하기 위해 정수리 주변의 머리카락을 둥그렇게 깎아냈기 때문이다.
이것을 '백호친다'라고 했다. 요즘 중고등 학생들은 머리를 빡빡 깎지 않지만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일단 중학교에 입학하면 머리카락을 깨끗하게 밀어 버렸는데, 그것도 '백호친다'라고 표현했다.
옛날 남자들은 상투를 틀 때 우선 정수리 주변의 머리카락을 깨끗이 깎아냈다. 그런 다음 주변머리를 모아 한데 빗어 올려 정수리 부근에서 상투를 틀었다. 그러니 만약 머리를 풀어헤치면 정수리만 반짝반짝 빛이 나 아주 재미있는 모습이 된다.
죄인들은 상투를 틀지 못하고 머리를 풀어헤치게 되어 있는데, 앞으로는 사극에서 이런 모습을 찍으려면 머리 가운데를 빡빡 민 모습으로 재현해야 옳을 것이다.
상투를 틀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삼국지위지동이전'에는 사람들이 관모를 쓰지 않고 상투만으로 다녔다는 기록이 있다. 또 고구려 고분 벽화에도 크고 작은 상투를 튼 모습이 보인다. 따지고 보면 거의 2천년 가까이 상투를 트는 풍습을 유지했던 것이다.
1895년 김홍집 내각이 일본의 강요에 의해 단발령을 내린 것은 그 긴 세월 동안 이어져온 전통을 파괴한 혁명적 사건이었다. 단발령에 그토록 치열하게 저항했던 이유를 알 만하다.
그와 비슷한 사건이 역사상 한번 더 있으니, 바로 몽골에 의해 지배당했던 고려 말기의 일이다. 몽골의 풍습에 따라 이른바 '개체변발'이란 것을 하게 되는데, 이것은 상투를 트는 것과는 정반대로 정수리 부근의 머리카락만 남기고 나머지는 깨끗이 민 다음 뒤통수에서 묶어 길게 땋아내린 것이다.
1278년에 충렬왕이 변발령을 내렸는데, 다만 이때의 조치는 관리들에 대한 것으로 일반 백성이 이에 따랐다는 기록이 없다. "신체발부는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니 내 머리를 벨 수는 있으나 내 머리카락을 자를 수는 없다"며 버티던 그 머리카락 아닌가.
그럼에도 머리카락을 깎아낸 것을 보면 상투 속이 덥긴 더웠나보다.




윤광룡 기자 ykyong@morningnews.or.kr         윤광룡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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