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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은 영도다리 밑이라요"
  • 입력날짜 : 2004. 06.12. 16:33
내 고향은 부산 영도다리 밑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의 고향이 다리 밑이라는 건 다 아는 사실이지만 사는 지역에 따라 다리 이름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어릴적 말썽 많았던 나는 그날 아침 입고 나간 옷은 그날 빨래를 해야 할 정도로 거의 흙에 뒤범벅이 돼 돌아오곤 했다.
하루는 학교를 파하고 친구들과 '돌던지기' 전쟁(?)을 벌였다. 우리 집 바로 밑에 기와집을 짓고 하인을 수없이 거느린 부잣집 손주 녀석이 마침 적군이었다.
대문도 얼마나 어리어리한지 어린 마음에 그 집에 한번 갈라치면 가슴이 콩닥거려 제대로 걸을수도 없었다. 집도 큰데다 하인까지 거느렸으니 얼마나 주눅 들었겠는가.
또 한가지 한 맺힌 사연이 있다. 형이 갑자기 몸에 열이 나 그 집에 주사를 맞으러 갔다. 엉덩이를 살살 문지러더니 탁 하고 주사 바늘을 꽂았는데, 아뿔싸 그만 형이 엉덩이에 힘을 주는 바람에 바늘이 부러지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바로 옆에 문제의 그 손주 녀석이 배를 움켜쥐고 깔깔 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니 잘 걸리따. 오늘 나 한테 함 주거바라"
전쟁은 시작됐다. 난 어릴 때부터 돌팔매질에는 자신이 있었다. 타고난 피를 어찌할 수는 없었나 보다.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아버지가 매년 열리던 옥포대첩제 '석전대회'에 나가시면 어김없이 1등을 하셨다. 상품도 무지하게 타 오신 것 같다.
그날따라 몸이 잘 풀렸는지 단 한방에 그 녀석을 자빠트렸다. 그것도 '눈티밤티' 되게 정확하게…. 난 그 길로 삼십육계를 놨다. 집에 틀어박혀 숨죽여 있는데 아니나다를까 밖에서는 '눈티밤티' 된 녀석이 울고불고 난리였다.
사태를 수습한 어머니는 날 어김없이 불러 세웠다. 역시나 내가 감당해야 할 일은 종아리를 걷어 올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날따라 어머니가 때리시는 매가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눈티밤티' 된 녀석 생각하니 웃음만 나올 뿐…. 음하하∼.
아참, 글 첫마디부터 고향 타령을 한 이유가 궁금하실 것이다. 내 고향을 부산 영도다리 밑이라 했으니 궁금하실 분도 계시지만 대충 감을 잡으신 분들도 계실 것이다.
이렇듯 말썽만 피우던 나에게 어머니는 늘 이렇게 말씀 하셨다.
"니 이리 말 안듣는 거, 너거 진짜 어무이가 보모 우짤라꼬 그라노. 한번만 더 이라모 니 너검마 한테 쪼까 보내삔다. 아라서 해라"
거참, 알다가도 모를 일일세. 내 진짜 엄마라니? 기도 안차는 얘기였다. 엄연히 내 '어무이'는 앞에 계시는데….
몇 달이 지나고 여름방학때 부산 이모댁에 가게됐다. 난 들떤 마음에 휘파람을 불고 있는데 느닷없는 한마디가 내 머리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오늘 니 진짜 엄마 사는데 보여주꺼마. 이따 배타고 갈 때 부리모 와서 바라 아라쩨?"
이것이 과연 무슨 소리인고? 기도 안차는 게 아니라 갑자기 걱정이 앞섰다. 걱정이 앞섰다기 보다는 '혼돈' 그 자체였다.
멀리 용두산 공원이 보이고 점점 더 가까이 영도다리가 보인다. 가슴이 콩닥거린다. 과연 내 진짜 어머니가 다리 밑에 계실까. 짐짓 너스레를 떨며 헛기침만 한다. 게슴츠레 한 눈으로 슬쩍 흘겨보니 사람 살만한 집 같은 것은 안보인다.
"살았다. 그럼 그렇지 다리 밑에 어떻게 사람이 살아? 우히히…"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는찰나, 이 틈을 놓칠세라 칼날같은 말 한마디가 날아 들었다.
"너거 엄마 딴데로 간는갑따. 니는 인자 진짜로 갈데도 엄네. 내 말 잘 들으모 같이 살아준다. 우짤래?"
그날 이후로 순한 양이 된 나는 어머니께 혼날 일만 있으면 영도다리 밑의 내 진짜 '어무이'를 생각한다. "이 집에서 쫓겨나면 진짜 갈데도 없는데…."
세월이 흐른 지금, 가끔씩 배를 타고 부산엘 간다. 내 진짜 '어무이'가 살던 영도다리 밑을 지나서….




윤광룡 기자 ykyong@morningnews.or.kr         윤광룡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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