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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이 오면 ‘남겨진 기록’
  • 입력날짜 : 2004. 06.07. 16:50
할아버지 이름이 뭐더라. 서영조 할아버지는 왜 돌아가셨어. 할아버지 한번 봤으면 좋겠는데. 아빠는 할아버지 얼굴 기억하나.
그럼 할아버지 얼굴 기억하지.

초등학교 1학년인 막내 혜림이는 할아버지를 궁금하게 여긴다. 할아버지가 왜 돌아가셨는지... 어린 딸 아이는 할아버지를 추억하지 못하는 아빠를 무척이나 불쌍하게 여긴다.

아이들에게 전쟁을 이야기하기 어렵다.
흔한 사상이나 이념 때문이 아니라 전쟁 통에 질 그릇 깨어지듯, 헌신짝 버려지듯 그렇게 상처받은 수 많은 가족들의 상처를 이야기 할 만한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6월이 오면 거름지개를 지고 산꼭대기 고구마 밭을 종일 오르내리시던 어머니, 화장품 가방을 메고 이 마을 저 마을을 돌아다니던 내 어머니의 삶의 무게가 언제나처럼 가슴을 치기 때문이기도 하다.
소주한잔 취기를 빌어 마당에 두발 뻗고 아들 이름 부르며 통곡하던 할머니의 아픔도 아이들에게 설명해 줄 수 가 없다.

나는 6월이 오면 아이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며 자유와 민주주의를 사랑한 영혼과 남은 자들의 슬픔을 위로하고 기도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사상이나 이념은 동전의 양면과 같지만 삶과 죽음은 이생에서의 단절을 의미하기에 나는 이땅의 아이들이 가족과 함께 전쟁 없는 세상에서 자유하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외할아버지가 보도연맹에 연루돼 처형되면서 시작된 어머니의 고단한 삶은 대한민국 현대사가 남긴 전쟁의 올가미에 메여있다. 아버지 없는 삶을 살아온 어머니는 젊은날에 나의 아버지를 만났다.
홀 어머니를 모신 아버지는 해병하사관에 지원했고 “집안 살림을 일으키겠다”며 끝내 살아 돌아오지 못한 월남행을 택했다.

할머니, 어머니, 나 그리고 여동생 우리가족은 세상에 힘없는 모습으로 남겨졌고 할머니는 용한 점쟁이로 일당(?)을 벌고 어머니는 막일에다 온갖 일을 해가며 참으로 어렵고 힘든 세상을 견디며 두 남매를 키우시며 살아 오신분이다.
낡은 시골집 문 위에는 아버지의 목숨으로 바꾼 무공훈장이 버티고 있다. 하지만 무공훈장도 대한민국도 남은자의 상처를 위로하거나 보호하지는 못했다. 하나님만이 할머니와 어머니를 강하게 만들었고 늦게나마 자유하며 기도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한 것 같다.

사람은 여러 모양의 삶을 살다 결국 흙으로 돌아간다. 오늘도 삶의 모양이 경제적으로 때로는 질병으로, 원하지도 바라지도 않았던 참으로 고단하고 힘에 겨워 눈물조차 마를 지경에 놓여도 절망하지 않는 삶에 감사하며 기도하며 살아간다.
몇 해 전 올해의 봉사대상과 경남보훈대상을 받기도 했던 어머니는 지금도 미망인회 거제지회장을 지내며 사회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6월에 생각한다 “빈곤한 삶이던 풍요로운 삶이든 역사도 세상도 남겨진 자의 삶으로, 올바른 수고로 체워져 간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과 같이 잊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서용찬 기자 ycseo@morningnews.or.kr         서용찬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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