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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되짚기] 사명당, 정말 일본을 골탕먹였나
  • 입력날짜 : 2004. 05.18. 19:15
조일전쟁(임진왜란) 때 승병장으로 크게 활약한 사명당의 설화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왔다. 그 중에 일본과 관계되는 몇 토막을 소개해본다.
사명당이 일본군 사령관인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를 설득하기 위해 왜군 진영으로 들어갈 때에 몇 리에 걸쳐 깃발과 창검이 늘어서 있었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가토와 마주 앉았다. 가토는 사명당을 시험하기 위해 물었다.
그대 나라에 보배가 있는가?
사명당 : 우리나라에는 그대의 머리가 오직 보배이다. 나라에서 그대 머리에 천금의 상을 걸었기 때문이다.
이 말을 들은 가토는 사명당이 과연 듣던 대로 고승이라고 찬탄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이수광의 '지봉유설'에 기록되어 있다.
사명당이 일본에 사신으로 갔을 때의 이야기는 더욱 흥미진진하다. 일본왕은 여러 모로 사명당을 시험했다. 먼저 자기 나라의 문화 수준을 자랑하기 위해 일본의 유명한 시인이 쓴 장시를 사명당이 지나가는 길가에 세워놓았다.
사명당은 이를 지나가면서 흘깃 보았다. 일본왕이 은근히 이를 자랑하자, 사명당은 그 시를 모조리 외워 보이고는 남의 것을 베낀 것이라고 말해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
한편 사명당의 숙소를 얼음집으로 만들어 그곳에서 묵으라 하였다. 그 다음날 얼어죽었겠지 짐작하고 문을 열어 보았더니 부채를 활활 부치며 왜국은 왜 이리 덥냐고 하더란다.
일본왕은 이번엔 노골적으로 사명당을 큰 무쇠로 된 막사에 넣고 숯불을 무진장 피워 무쇠막을 시뻘겋게 달구었다. 이제는 데어죽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문을 열어보니 웬걸, 천장에 얼음 빙(氷)자를 써붙이고는 도술을 부려 수염과 눈썹에 고드름을 주렁주렁 매달고서는 왜국은 왜 이리 춥냐고 말하더란다.
화가 난 일본왕은 더 노골적으로 무쇠로 만든 말을 시뻘겋게 달궈놓고 사명당에게 이를 타보라고 말했다. 사명당은 또 도술을 부려 비를 오게 해서 무쇠 말을 식혔을 뿐만 아니라 장마비를 계속 쏟아지게 했다. 왜국이 온통 물에 잠기게 되자 그제서야 일본왕은 항복을 하더란다.
이렇게 해서 사명당은 일본왕의 극진한 대접을 받았으며 여러모로 일본왕을 타일렀다. 그러고 나서 일본왕으로부터 매년 사람가죽 3백장씩을 조공하게 했다 한다.
이상의 이야기는 물론 황당무계하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구전으로 꾸준히 민중들 사이에 전해져왔고 그 무서운 일제시대에도 사라지지 않고 숨어 전해왔다. 더욱이 '임진록'이라는 소설 같은 책에 이런 이야기가 전해오자, 민중들은 더욱 사실처럼 받아들였다.
또 19세기 말 일제가 한창 침략의 마수를 뻗칠 때에 쓰여진 것으로 보이는 '사명당전'이 나돌자 이전보다 더욱 급속도로 번져나갔다. 민중들은 사실과 허구를 가릴 여지가 없었다.
이야기 속에 담긴 민중의 항일 정서
그러나 이러한 책들은 몇 가지 사실을 바탕으로 꾸며진 것이다. 사명당이 조정의 명을 받고 가토와 만나 화의 교섭에 나선 일이 있다. 그때 그는 물론 당당했을 터이지만 가토의 머리 운운한 이야기는 꾸민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 뒤 사명당은 불교를 독실하게 믿는 가토와 친분을 맺었다고 하며 또 그의 주선으로 일본에 사신으로 가기도 했다 한다.
그 당시에는 관백(關白 실제의 권한을 쥔 벼슬)이 모든 일을 주관했는데, 사명당이 일본에 갔을 때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죽고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관백으로 있었다. 그러니 '왜왕'이라 한 것은 실정을 모르고 한 이야기이다.
도쿠가와는 도요토미와는 달리 우리나라에 대해 우호적이었고 선린관계를 희망했다 하여 사명당은 그때 좋은 대접을 받고 돌아왔다. 그런 탓으로 도쿠가와 막부(幕府)가 있을 때인 조선 후기에는 일본과 지속적인 우호관계를 유지했다.
어쨋거나 이 설화에는 두어 가지 민중의식이 깔려 있다. 조일전쟁 직후에는 일본에 대한 민중의 적개심이 짙게 형성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사명당이라는 민중의 친밀한 벗을 통해 민족의 자부심과 긍지를 심으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이다.
그 다음으로 구한말과 식민지시대에 이 설화가 급속도로 번져나간 것은 일제에 대한 멸시와 증오심을 키우려는 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역사와 국어가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교육되었던 그때의 실정을 보아도 짐작할 수가 있겠다.
지금 일본은 한국에 대한 식민지 통치가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등 별별 해괴한 말들을 늘어놓고 있다. 다시 현대판 '임진록'을 읽어야 할 판이다.




윤광룡 기자 ykyong@morningnews.or.kr         윤광룡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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