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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되짚기] 돼지와 이성계, 걸맞지 않은 만남
  • 입력날짜 : 2004. 05.08. 22:01
조선 태조상. 이성계는 나라는 건국했으나 개성 사람들의 미움을 받았다.
돼지와 이성계, 조금은 걸맞지 않은 듯 보이지만, 여기에는 재미있는 민중설화가 전해온다.
조선조를 연 이성계는 무장 출신으로 권력기반을 다져나갔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무리하게 권력을 잡을 때에는 피비린내 나는 살육이 저질러지게 마련이다.
조선이 건국되자 이성계를 영웅으로 만드는 '이미지 조작'이 벌어졌다. 어릴 적부터 어찌나 활을 잘 쏘던지 담장에 나란히 앉은 다섯 마리의 새를 화살 하나로 모조리 떨어뜨렸다는 이야기, 또 어찌나 말을 잘 탔던지 말을 몰아 도둑과 싸우면서 절벽을 기어올랐다는 이야기도 만들어졌다.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능력이었다.
이와는 조금 다르지만 지리산에서 나온 비결에는 '십팔자 위왕(十八字 爲王)'이란 글씨가 쓰여 있어 이성계가 왕이 될 운명으로 태어났다고 알려진다. '십팔자'는 곧 이(李)의 파자(破字)이니 이가가 왕이 된다는 뜻이다. 이어 이성계는 북쪽의 오랑캐나 남쪽의 왜와 수많은 싸움을 벌이면서 필요 없는 살상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로 덕장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당시 고려 말의 많은 사람들, 특히 개성 사람들은 이성계에 대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성계가 개성 사람 특히 왕씨들을 무수히 죽였기 때문이다. 그 결과 개성에 도읍을 정하지 못하고 한양으로 옮겨야 했다.
개성 사람들은 덕물산 중턱에 당집을 만들어 최영 장군의 화상을 그려 모시고 신으로 받들었다. 무당들은 이곳에서 당제를 지내며 개성 사람들의 마음을 달랬다. 최영 장군은 고려왕조를 지킨 버팀목이었다.
최영이 명나라를 치기 위해 요동정벌을 지휘했을 때, 일선 사령관인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해 그를 죽게 만들었다. 최영과 이성계, 개성 사람들은 최영을 택했고 그의 원혼을 달래는 것으로 자신들의 뜻을 나타냈다.
최영 장군 당제 때 바치는 '성계육'
최영의 영혼을 달래는 당제를 지낼 때에는 통돼지를 제물로 바쳤다. 이는 어느 당제나 마찬기지인데, 당제를 끝내고 음복을 할적에 아주 독특한 광경이 벌어졌다. 통돼지를 눕혀놓고 아무렇게나 마구 썰어댄다. 너도나도 나서 칼로 머리를 치기도 하고 배를 가르기도 하며 살점을 뭉텅뭉텅 썰기도 하고 잘게 썰기도 한다.
그러고 나서 썰어낸 고기를 마구 씹어 먹는다. 보통때의 음복하는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 마치 험한 인상을 지으며 복수하는 듯한 몸짓을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이성계의 이름을 따서 '성계육'이라 불렀다.
또한 이들은 돼지고기를 썰어서 국을 끓여 먹었다. 그들은 돼지고깃국의 살점을 질겅질겅 씹으면서 이를 또 '성계탕'이라 불렀다. 돼지고기와 성계국, 성계탕은 무슨 상관이 있었을까. 이성계는 기해생(己亥生), 곧 돼지띠였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떡국을 끓일 때도 떡을 가지런히 썰지 않는다. 그들은 떡 덩어리를 아무렇게나 뭉치고는 손으로 비틀어가면서 떼어 국을 끓인다. 이를테면 목을 비틀 듯 떡을 떼는 것이다. 마치 이성계의 목을 비트는 쾌감을 맛보려는 듯 말이다. 이런 떡국을 '조랑떡국'이라 불렀다.
그들은 '조랑떡국'을 맛있게 즐겼다. 주로 이런 일들은 정초에 벌어졌다. 우리 민족에게 있어 돼지는 부자를 상징하는데 개성에서는 달랐다. 덕물산의 무당은 지리산 무당과 함께 팔도로 퍼져나갔다. 즉, 우리나라 무당의 원조라는 뜻이다. 이렇게 전국으로 무당이 퍼져나가면서 '성계육' 의식도 함께 퍼져나갔다.
이 고사는 아무리 훌륭한 업적을 이루거나 큰 권력을 잡더라도 남에게 깊은 원한을 사거나 많은 살상을 저지르면 민중들의 저항을 받는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윤광룡 기자 ykyong@morningnews.or.kr         윤광룡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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