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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스키와 진돗개 "내 종교만 종교인가?"
세상에 판에 박힌 순수 종교는 없다
  • 입력날짜 : 2004. 04.23. 23:38
서부 캐나다 북쪽 어디에 외딴 마을이 있었다. 그 마을에는 개라면 눈썰매를 끄는 허스키라는 개 밖에 없었다. 그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경우 '개' 하면 떠오르는 것이 회색 털, 반미터 정도의 키, 우뚝 솟은 귀, 뾰족하게 튀어나온 입, 늑대 같은 짖음 등이다. 그들의 경우 개라면 무조건 허스키이다.
그러다가 세월이 바뀌어 이 마을에서도 점점 많은 사람이 대도시나 다른 나라로 여행을 하게 됐다. 어느 날 어디로 멀리 여행을 갔다 오는 사람이 중국산인가 하는 '시츠'라는 개 한 마리를 데리고 왔다. 갈색인 데다가, 손안에 들어올 만큼 작은 몸집, 귀는 척 늘어졌고, 긴 털이 온통 얼굴을 가리고 있고, 입은 몽땅하고, 짖는 것도 캥캥하는 소리뿐이다.
이 마을 사람들은 이 개를 놓고 "이것이 개냐 아니냐" 하고 토의하기 시작했다. 몇몇 사람은 이것도 우리가 알고 있는 허스키와 기본적으로 같은 특성이 있으므로 개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대부분의 사람은 이렇게 요상하게 생긴 짐승을 개로 인정하는 것은 우리가 지금껏 사랑하던 허스키에 대한 모독으로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이단설이라고 주장했다.
이제 사람들의 여행이 더욱 잦아지고 그에 따라 이 마을에도 셰퍼드, 도베르만, 라바돌 리트리버, 토이 푸들, 테리어, 치와와, 진돗개 등등의 개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개라는 것도 한두 가지가 아니구나 하는 것을 발견하고, 자기의 기호에 따라 이런 저런 개를 사서 키우며 자기들의 '개 경험'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아직도 허스키만 개라는 믿음을 굳게 지켜야 한다고 믿는 사람은 모든 개를 개로 여기는 사람들의 '타락상'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그 중 더러는 적극적으로 다른 모든 개를 개로 인정하려는 사람의 오류와 그런 오류를 퍼뜨리려는 사람의 기도를 박멸하는 것이 허스키에 대한 그들의 충성심을 입증하는 것이라 생각하기까지 한다.
그런데 얼마 후부터 그 허스키 충성파 사이에서조차 난리가 났다. 그 충성파 사이에 누구의 허스키가 순종 허스키냐 하는 논쟁이 생긴 것이다. 각자 그 마을의 많은 허스키 중에서도 눈 위에 흰 점이 박힌 자기 집 허스키만 순종 허스키요, 그것과 다르게 생긴 다른 집 허스키 모두 허스키가 아니라는 것이다.
허스키면 다 허스키냐? 허스키 중에서도 이상스럽게 눈 위에 흰 점이 흐리게 보인다거나 색깔이 좀 다른 것 같이 보이는 것이 있는데, 이런 허스키는 요즘 새로 들어온 잡개의 피가 잘못 섞여서 생긴 가짜 허스키라는 것이다.
이런 극진한 순종 허스키 충성파 사람 중 몇몇이 한국에 와서 그들의 생각을 전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똥개는 개가 아니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진돗개처럼 허스키 비슷하게 생긴 개도 진짜 개가 아니라고 한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그들의 말을 믿기 시작했다. 얼마를 지나자 어처구니 없게도 그 캐나다 서부 북쪽 마을 사람들보다 한국 사람들 사이에 허스키만이 개라고 주장을 하는 사람의 숫자가 훨씬 더 많아지게 됐다.
그러다가 한국에서 허스키에 대한 관심이 깊은 두 젊은이가 그것에 대해 본격적으로 연구하겠다고 허스키의 본고장인 캐나다 그 북쪽 마을로 유학을 갔다. 가서보니 놀랍게도 그 마을에서는 이미 허스키만 개라는 생각이 그렇게 강하지 않았다.
한 젊은이는 허스키만 개라고 믿었던 자기들의 믿음이 사실 근거도 없고 필요도 없는 것이었음을 깨닫게 됐다. 한편 다른 젊은이는 이 마을이 타락해서 아름다운 허스키 전통에서 멀어져도 한참 멀어졌구나 하고 개탄한다. 둘이서 한국으로 귀국해서 각자가 발견한 것을 말한다.
또 한번 어처구니 없게도 처음 젊은이는 우리의 믿음을 흔드는 이단이라 하여 강단에서 쫓겨나고 둘째 젊은이야말로 배울 것을 잘 배워왔다고 떠받들어진다. 그리하여 한국에서는 허스키만, 그것도 특종 허스키만 진짜 개라는 생각이 더욱 굳어지고 더욱 널리 퍼진다. 가히 허스키의 종주국이라 할 만하다.
인류학자의 말을 빌리면 인간이든 짐승이든 '순종'이란 있을 수 없다. 정도 차이는 있지만 모두가 서로 섞여서 된 잡종이다. 허스키도 늑대의 피가 섞여서 된 종자라 한다. 종교사나 사상사를 연구하는 사람은 종교나 사상의 경우 잡종이란 말 대신에 '융합'이란 말을 쓴다.
역사적으로 모든 종교나 사상은 고립된 진공관 속에서 보관·유지되어 온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서로 '지평융합'을 하면서 계속된다는 것이다. 세상에 판에 박힌 한 가지 순수 종교가 있을 수 없다.
유대교도 바벨론 포로 때 조로아스터교로부터 천사, 부활, 최후심판, 낙원 등의 개념을 받아들였고, 기독교도 이런 혼합된 유대교 사상에다 희랍의 '밀의 종교'나 철학사상을 결합시켜서 생겨난 합작품이라는 주장도 있다.
중국의 '선불교'가 인도 불교와 중국 도가사상의 결합이고, 신유학이 유불도의 습합에서 생긴 산물이라는 것이 일반화 되어있다.
종교도 살아있는 종교라면 다른 모든 살아있는 유기체와 마찬가지로 서로 관계를 가지면서 자라나고 변화하는 것이다. 이렇게 자라나고 변화하지 않는 종교란 죽은 종교이다.


윤광룡 기자 ykyong@morningnews.or.kr         윤광룡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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