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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되짚기] '지구는 돈다'고 한 최초의 한국인
  • 입력날짜 : 2004. 04.07. 19:55
1765년 11월, 한양에서는 일군의 무리들이 말을 타고 혹은 걸어서 길을 떠나고 있었다. 매년 한 차례 정기적으로 청나라로 떠나는 동지사의 사신 일행이었다. 3백여명의 일행 가운데 홍대용(1731∼1783)이라는 수행 군관이 있었다.
과거에 여러차례 떨어진 후 머리도 식힐 겸, 청의 선진문물도 배울 겸해서 서른다섯의 나이로 작은 아버지 홍억의 수행관이라는 명목으로 이 사신 행렬에 따라나섰다. 홍억이 서장관(외교문서 및 사건 기록관, 서열 3위)이었던 만큼 사람 하나쯤 붙이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일행은 11월 초에 중국으로 떠나 그해가 가기 전에 북경에 도착했다. 먼길이었다. 그런데 북경에 도착하자 홍대용은 작은 아버지 홍억을 수행하는 것보단 딴 일에 훨씬 열심이었다. 중국 학자들과 교분을 나누는가 하면, 당시 북경에 와 있던 서양 선교사들을 만나러 다녔다.
독일계 선교사로 중국 조정에서 일하던 유송령, 포우관 등이 그들이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선교사들이 한문을 좀 알고 있었기 때문에 홍대용은 그들과 필담을 나누곤 했다. 홍대용은 이들을 통해 서양과 서양의 새로운 과학사상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북경에서 60일 가량 체류한 동지사 일행은 2월에 북경을 출발해 조선으로 돌아왔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이 기간은 홍대용의 삶을 바꾸어 놓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후 홍대용은 벼슬을 살기는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에 한 번도 그 이름이 나오지 않을 만큼 미직이었다.
새로운 문물과 새로운 사상을 접한 홍대용은 북경에서 돌아온 후 10여년 간 자기 나름의 독창적인 과학사상을 세우기 시작했다. 홍대용이 세운 과학사상 중 가장 획기적인 것은 지전설이다. 지구가 스스로 돈다는 것이다.
그는 서양 선교사들의 책에서 천동설과 지전설을 비교해 놓은 것을 보았다. 이미 서양에서는 지전설이 널리 퍼져 교회의 천동설과 대립하고 있었다. 선교사들은 혹 중국 사람들이 지전설을 믿을까봐, 천동설과 지전설을 비교해 천동설의 옳음을 설파했다.
그 바람에 고대 그리스에서 지전설을 설파한 헤라클레이토스 등의 주장과 다양한 천체관을 담은 '오위력지(五緯曆指, 1638년 간행) 같은 책이 중국에서 간행됐다. 그런데 홍대용은 선교사들의 주장과 여러 책들을 읽고는 선교사의 강력한 주장을 무시하고, 오히려 지전설이 옳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하늘이 도는 것보다는 지구가 도는 것이 간편할 뿐 아니라 합리적이라는 것이었다. 홍대용은 독창적인 지전설 외에도 우주무한론을 주장했고 수학, 천문학 등에도 업적을 남겨 조선시대의 가장 뛰어난 과학사상가로 평가받게 됐다.
그러면 홍대용이 지구가 스스로 돈다고 말한 최초의 한국인일까? 아니다. 홍대용이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지전설을 주장한 한국인이 있었다. 바로 김석문(1658∼1735)이다. 그 역시 관직은 별 볼일 없어 군수를 지낸 것이 고작이지만 새로운 학문에 열심인 성리학자였다.
애초에 김석문은 역(易)에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중국 주자학의 대가들이 주장한 삼라만상의 형성과 변화의 이치를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선교사가 쓴 한 권의 책을 보았는데 바로 '오위력지'였다. 이 책에는 천동설을 주장하는 프톨레미와 지전설을 주장한 브라에의 생각이 소개되어 있었다.
브라에는 지구를 중심으로 달과 태양 및 행성이 회전하며, 태양의 둘레를 수성, 금성, 목성, 화성, 토성 등이 회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좀 불완전한 천체관이지만, 김석문은 자신의 성리학적 관점에서 이해한 역을 토대로 브라에의 견해를 받아들이면서 여기에 한가지를 보완했다. 김석문은 자신이 쓴 '역학도해(易學圖解)'에서 여러 행성들이 태양의 주위를 궤도를 따라 돌 뿐만 아니라 지구도 남북극을 축으로 1년에 360번 자전한다고 주장했다.
만물을 움직이게 하는 기의 흐름으로 볼 때 지구도 움직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선구적인 과학사상은 제대로 전파되지 못했다. 과학적인 천문관측을 통해 형성된 과학사상이 아닐뿐더러, 다른 학자들의 관심을 끌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지구가 돌든 하늘이 돌든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신경쓰지 않았다. 서양에서 지동설이 신의 입지를 위협했던 것과 달리, 조선의 성리학 체계는 지동설의 위협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의 독창적인 생각은 단지 주장으로 남았을 뿐이다.



윤광룡 기자 ykyong@morningnews.or.kr         윤광룡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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