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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되짚기] 황진이는 화담에게서 도학을 배웠다
  • 입력날짜 : 2004. 03.12. 14:58
우리는 보통 '황진이' 하면 기생을 연상한다. 실제 황진이는 명기였다. 뛰어난 시재를 보였고 당당히 시인으로 대접받았다. 우리나라 여류시인을 가릴 때에는 황진이가 첫손에 꼽혔고 명시들을 모은 시선(詩選)에도 어김없이 올랐다.
타고난 미모와 재치에다가 시재를 갖추었으니 그 이름이 날 수 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뭇남성, 그 중에서도 풍류를 아는 시인 묵객들이 그녀를 한번 만나 시를 화답하기를 바랐다. 그녀는 이런 요구에 적당히 응해주었다. 그러나 이것은 그녀의 참모습이 아니었다. 그녀의 참모습은 어디에 있었을까.
황진이는 천한 신분 출신이었다. 그녀가 기생이 된 배경을 여기에서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겠다. 아무튼 그녀의 신분은 천했고 또 여자로 태어났다는 한탄이 늘 따랐다. 아무리 재주와 능력이 있더라도 천한 신분을 갖게 되면 벼슬자리에 오를 수도 없었고 선비의 반열에 낄 수 없는 것이 당시의 사회현실이 아니었던가.
더욱이 여자로 태어나면 귀하든 천하든 한 남성에게 매여 평생을 지내야 하지 않았던가. 이런 사정에서 황진이는 이 두 가지를 멍에로 가지고 있으니 재주를 달리 뽑낼 방도가 없었던 것이다.
황진이는 기생이 된 뒤에 많은 남성을 거느렸다. 이를테면 돈없는 무지랭이 선비도 상대했고, 체면을 차리는 고관을 품에 안기도 했다. 그런 남정네들이 그녀를 정실로 맞아줄 마음도 없었지만 그녀 또한 그런 남성에 매이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었을 것이다.
황진이가 이 남자 저 남자를 상대한 것은 기생신분인 탓도 있었지만, 도대체 한 남자에 매여 시시콜콜 콩이야 팥이야 할 여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남자를 가지고 놀았던 것이다. 때로는 남자의 가슴을 태우기도 하고 때로는 남자의 기개를 농락하기도 했다.
황진이는 신세를 한탄하고 세상을 비웃는 정도에서 벗어나 비뚤어진 사회에 도전하고 항거하는 방법을 이런 쪽에서 찾은 것이리라. 끝내 황진이는 도학이 높은 화담 서경덕에게까지 손을 뻗쳤다. 화담 선생, 그는 누구였던가?
화담은 산 속에 묻혀 지내는 미추(美醜)를 초월한 노인이었다. 평생 벼슬길에 나서지 않았지만 그의 제자들 중에는 높은 고관을 지낸 벼슬아치들도 많았다. 화담의 명망은 널리 알려져 있었다.
황진이는 '화담'을 바로 보았다. 결코 범상한 남정네가 아니었던 것이다. 황진이는 화담에게서 인간의 참모습, 우주의 진리 등을 배우고 깨달았다. 화담을 모시고 도학을 배운 후 그녀는 저항의 방향을 달리했다. 황진이도 도학자가 된 것이다.
화담의 도학은 '기일원론(氣一元論)'으로 모든 사물이 기작용에 의해 생성·발전한다는 것이다. 황진이가 이를 터득할 무렵 화담이 세상을 떠났다. 처음이자 마지막인 영원한 정인(情人)을 잃은 것이다.
화담 선생은 전국의 명산을 돌아다닌 적이 있다. 황진이는 화담의 발이 닿았던 곳, 곧 금강산, 속리산, 지리산을 찾아 다녔다. 화담이 내디딘 발자취를 따라 운수행각(雲水行脚)을 한 것이다.
황진이는 세상의 모든 명리도 끊고 세상의 이목도 피해가면서 지팡이와 짚신을 벗삼아 전국을 떠돌아 다녔다. 이것은 단순한 유람이 결코 아니었다. 그녀는 이렇게 세월을 보내다가 세상 사람이 알아보지 못하는 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결국 화담의 곁으로 간 것이다.
황진이가 화담의 발자취를 찾아다닌 뒤의 행적은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그녀는 혼자서 철저한 고독을 누리려 했던 것일까. 아닐 것이다. 아마 그녀는 스승이요 정인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고 그 경지를 맛보려 했을 것이다.
화담의 제자들이 비록 벼슬자리에 많이 나갔지만 화담의 진정한 가르침은 그것이 아니다. 철저한 현실비판과 민중 속에 살면서 자기 개선을 도모하는 것이 그의 도학의 진수였다. 이 줄기를 이은 사람들로 이지함이 있고 또 박지화를 비롯, 천한 신분의 정개청, 서기 등이 있다.
이들은 은둔해 있으면서 날카롭게 현실을 비판하는 안목으로 뒷날 민중들의 우상이 되었다. 황진이도 그 대열에 낀 것이다. 황진이는 기생 시인에서 사상가로 변신한 것이다.
오늘날 여권을 이야기하고 예전의 여인상을 많이들 더듬어 보지만, 황진이의 이런 모습은 잘 모르는 것 같다. 툭하면 봉건사회의 윤리에 철저했던 신사임당을 참된 여인상으로 그리면서 황진이의 참모습은 애써 외면하고 있다. 황진이는 분명 이런 여인상은 아니었다.
화담 VS 황진이
/마음아 너는 어이 매양에 젊었는다/내 늙을 적이면 넌들 아니 늙을소냐/아마도 너 쫓아다니다가 남우일까 하노라/
화담도 인간인지라 황진이에게 끌리고 있는 한가닥 애틋한 '정'이 여운을 끈다. 원숙한 경지에 도달한 화담의 인간적인 멋을 느낀다. 자칫 목석같은 사람으로 생각하기 쉬운 도학자이지만, 화담의 경지에 이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는 것을 여기에서 느낄 수 있지 않은가.
/마음이 어린 후이니 하는 일이 다 어리다/만중 운산에 어느 님 오리요마는/지는 잎 부는 바람에 행여 긘가 하노라/
화담에게 글을 배우러 오던 황진이를 생각하며 지은 노래라고 하는데, 학문밖에 모르는 화담도 황진이의 여성적인 매력에는 역시 마음이 흔들렸던가 보다. 화담도 목석이 아닌 다음에야 그럴 법한 일이지만, 황진이에게 빠져 학문을 게을리 하지는 않았다. 깨끗한 애정으로 승화시킨 점이 화담의 인격을 더욱 돋보이게 해준다.
근엄하기만 한 도학자로만 알았던 화담에게 이런 낭만이 있었다는 것은 그를 인간적으로 한결 친근함을 느끼게 해주지 않는가. 사랑하는 마음, 특히 연애 감정에는 지칠 줄 모르는 생명력이 깃들어 있다. 이에 화답하는 황진이의 시조를 음미해 보자.
/내 언제 무신하여 님을 언제 속였관데/월침삼경에 온 뜻이 전혀 없네/추풍에 지는 잎 소리야 낸들 어이하리요/
비록 스승과 제자의 사이지만 이성으로서의 애정을 은근히 느끼게 된 것은 황진이나 화담이나 다름이 없었으리라. 그래서 이런 노래가 오고간 것이 아니겠는가. 다만 그것을 순수한 애정으로 승화시킨 데에 화담의 고매한 덕성과 황진이의 반짝이는 총명이 조화를 이루었던 것이다.
"지는 잎 부는 바람에 행여 긘가" 하는 화담의 은근한 연정을 넌지시 받아서, "가을 바람에 지는 잎 소리인데, 그것을 낸들 어떻게 하겠습니까"라고 화답한 것은 체념하는 듯하면서도 속으로는 더욱 간절한 애정을 담고 있다 하겠다.



윤광룡 기자 ykyong@morningnews.or.kr         윤광룡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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