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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되짚기] 신라시대 기독교의 흔적
  • 입력날짜 : 2004. 02.15. 00:00
1956년 경주에서 돌로 만든 십자가, 동으로 만든 십자가, 그리고 마리아 관음상이 출토됐다. 그렇다면 기독교가 신라시대에 들어왔단 말일까? 불교 국가였던 신라, 기독교의 발상지와는 너무나 멀리 떨어진 동방의 끄트머리에 있던 그 신라에 기독교인이 있었단 말인가?
신라의 기독교 전파와 관련된 역사 기록은 현재 남아있지 않다. 십자가 유물이 유일한 증거이다. 그런데 가까운 일본에는 천황이 선교사와 만났다는 기록이 있다. 일본의 옛 문헌인 '속 일본서기'를 보면 783년에 천황이 당나라 사람 황보를 만났는데, 이때 선교사 밀리스를 함께 만났다는 것이다.
우리의 옛 땅 만주에서는 기독교도의 무덤이 출토됐는데 여기서도 십자가와 동방박사의 아기예수 경배도가 발견됐다.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시아의 광범위한 지역에서 기독교의 흔적이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그 시기도 신라시대, 좀더 정확히 말하면 남북국시대와 대체로 일치한다.
그런데 동북아시아의 당시 기독교 유적은 대개가 경교(景敎)라고 불리는 종파의 흔적인 것으로 보인다. 당나라 사람 황보가 천황과 만날 때 동행했던 선교사 밀리스도 경교의 선교사였다. 경교의 아시아 전파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신라 십자가의 비밀을 밝힐 수 있지 않을까.
당나라는 세계의 문화 교류와 무역의 중심지로서 세계 각국의 문물을 다양하게 받아들였다. 그 중에서도 당 태종은 각종 종교를 박해하지 않고 수용했다. 635년, 당 태종은 멀리 페르시아에서 온 네스토리우스교의 선교사들과 만났다. 이 네스토리우스교를 중국 사람들은 경교라고 불렀다. 이후 경교는 중국에서 조정의 환영을 받으면서 활발한 포교활동을 펼친다.
781년에는 경교의 중국 전파를 기념하기 위한 기념비가 세워지기도 했는데, 그것이 대진경교유행중국비(大秦景敎流行中國碑)이다. 대진은 페르시아를 말하는 것이니, '페르시아의 경교가 중국에서 유행한 것을 기념하는 비'라는 뜻이다. 이렇게 전파된 경교는 수세기 동안 활발하게 선교활동을 펼쳐 상당한 교세를 이뤘다. 이때 당나라와의 교류가 활발했던 신라가 당나라를 통해 경교와 접촉했을 가능성이 높다.
경교의 동북아시아 전파는 전적으로 당나라의 포용성에 기대어 있었다. 따라서 907년 당나라가 망하자 이후 중국에서 불교를 더욱 활발히 받아들이면서 경교와도 접촉했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까지 선교사가 다녀갔던 점으로 미루어 신라의 왕(선덕여왕)도 선교사를 만났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십자가 유물을 몇 개 남긴 것 외에는 다른 유적이나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경교의 활동이 활발했던 것 같지는 않다. 1천3백여년 전, 이렇게 기독교의 한 종파는 한반도에 잠시 왔다가 땅 속의 유물로 남아 천 년을 견뎠던 것이다.


윤광룡 기자 yong8128@chollian.net         윤광룡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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